나와 앵무새의 인연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91년,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맞벌이하는 부모님께서 늘 갖고 싶다고 졸랐던 강아지 대신, 손이 덜 가고 조용한 잉꼬 두 마리를 생일선물로 주셨던 것이다. 초등학생답게 이름은 새순이, 새돌이로 짓고 새장 앞에 한참을 앉아 털을 고르던 그 귀여운 생명체를 베란다에 앉아 한참이나 바라보았던 것이 기억난다. 노란색과 녹색의 바탕에 검정색 줄무늬가 있던 자그마한 녀석들은 집에 오면 혼자 시간을 보내던 내게 꽤 특별한 친구가 되었다. 5년이 지나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수명을 다해 차례로 낙조한 아이들을 묻어주고서는 몇 달 후 백문조를 데려왔다.
▲ 백문조 |
하얗고 통통한 몸에 보석처럼 빨갛고 윤기나는 부리를 가진 백문조는 잉꼬보다 조용하고 고상했지만 안타깝게도 추위에는 약했다. 밤사이 베란다에서 방으로 들여놓는 것을 잊어버렸던 겨울밤이 지나고, 그 아이들은 새장바닥에 하늘을 보며 누워있었다. 허망할 정도로 약한 생명체를 나 때문에 죽게 했다는 자책감에 울며 아파트 앞 화단의 언 땅을 파서 묻어주었다.
그리고 십 년이 흘러 25살이 되었다. 그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가 생일선물로 무엇을 갖고 싶냐 물어 대답한 것이 “아주 예쁜 앵무새”가 갖고 싶다고 했고, 그렇게 나에게 ‘맘보’가 오게 되었다. 맘보는 사람이 이유식을 먹여 기른 2달 된 청백할리퀸 잉꼬였는데, 처음 선물을 받아 상자를 열자 냉큼 나의 팔을 타고 어깨로 올라와 얼굴을 비빌 만큼 넉살이 좋은 녀석이었다. 그 사랑스러운 녀석의 이름의 이름은 펭귄이 주인공인 <해피피트>라는 애니메이션에서 따왔다. 멸종위기에 처해있지만, 행복할 땐 맘보춤을 춘다는 그 펭귄들처럼 ‘늘 행복한 새로 함께 있자’는 뜻에서 지어준 이름이었다.
맘보와 나는 마음이 잘 맞았다. 퇴근 후 집에 오면 새장에서 나를 기다리던 맘보를 꺼내 배 위에 올려놓고 같이 TV를 봤고, 내가 과일을 먹으면 맘보는 손에 앉아선 작은 부리로 아삭아삭 과일을 깨물어 먹곤 했다. 머리를 긁어주면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행복한 듯 눈을 감고, 안 보이면 나를 애타게 찾는, 힘든 하루를 위로해주는 안식처이자 행복의 파랑새였다.
▲ 맘보 2개월 때 |
결국, 맘보에게 ‘새’ 친구를 만들어주기로 결심하고 맘보의 짝 ‘기린이’를 입양하게 되었다. 기린이는 오트밀 색 털이 아름다운 암컷 잉꼬였다. 자신 이외의 새를 처음 접해 어색해하던 맘보도 시간이 지나 기린이에게 마음을 열고 자신의 가족을 만들었다. 세 번의 번식을 통해 열 마리 가까운 대가족을 만들고, 아기새를 주위 사람에게 분양하기도 했다. 그렇게 맘보는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었다. 살뜰하게 자기 가족을 살피다가도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날개를 파닥이며 뛰어오는 모습은 보는 이가 저절로 미소를 짓게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맘보와 함께한지 3년 반이 되고, 나는 모든 애조인들의 꿈이라고 하는 마카우 종의 앵무새를 키우게 되었다.
▲ 맘보, 기린이, 구름이, 루비 거울 앞에서 |
▲ 맘보와 기린이 새끼들 |
<보물섬>이나 <캐리비안의 해적> 등에서 많이 접한 그 빨갛고 파란새가 바로 마카우 앵무인데, 내가 키우게 된 아이는 그 거대한 녀석들의 미니어처인 한스마카우였다. 빛을 받으면 오묘하게 반짝이는 녹색털에, 까맣고 반들반들한 부리, 선함이 묻어나오는 눈망울 등 새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홀릴 만큼 사랑스러운 외모였다.
하지만 이 고집스럽고 영악한 앵무새와 친해지는 과정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호두 정도는 우습게 까먹는 힘 쌘 부리로 손을 물어 피를 보는 것은 기본이요, 자신과 놀아주지 않으면 집안이 떠나가라 울어대곤 했다. 200g도 되지 않는 작은 몸이지만 소리는 상상을 초월했는데, 3층 집안에서 우는 소리가 옆 건물에서도 들릴 정도였다. (야생의 마카우 앵무가 우는 소리는 4km까지 들린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
꽃이란 뜻의 ‘하나(花)’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었지만 솔직히 이 아이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겁이 났다. 화를 내보기도 하고, 안고서 ‘나는 너를 해치지 않으니 너도 나를 사랑해주렴’ 말을 해보기도 했지만 마음 한곳엔 40년이라는 수명을 가진 이 아이와 끝까지 함께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게 평행선을 그리며 애완조보다는 동거조(?)로서 반년을 시간을 보냈다.
▲ 옷을 물며 놀고 있는 하나 |
그러던 어느 날 맘보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털을 부풀리고 새장 바닥에 앉아있는 시간이 늘고 밥을 잘 먹지 않았다. 걱정됐지만 마땅한 치료방법도 없어 집을 따듯한 곳에 옮겨주고 더 자주 말을 걸어주는 것이 전부였고, 맘보는 결국 이 주 만에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함께한지 3년하고도 8개월 만의 이별이었다.
강아지,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을 화장하는 곳에 사늘하게 식은 맘보를 들고 가 화장해달라고 했다. 업체에서는 황당해했지만 눈물을 줄줄 흘리는 나를 보며 진심이라고 느꼈는지 기꺼이 장례를 치러주었다. 내 안에 맘보는 참 커다란 존재였는데 맘보가 남긴 것은 티스푼 하나 정도의 재뿐이었다. 그나마도 자주 보고 싶어 집 앞 산책로에 있는 단풍나무 밑에 뿌려주었다.
▲ 하늘나라로 간 맘보 |
하나와 친해지게 된 것은 이 무렵이었다. 맘보를 떠나보낸 허전함을 하나를 보며 달래곤 했다. 새장 옆에 앉아, 경계하는 녀석에게 말도 걸어주고 간식도 주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니 조금씩 나와의 거리를 좁히며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동거조로 1년을 보낸 후 하나는 나의 손에 올라오기 시작했고,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허락했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 하나의 머리를 긁어주는 모습 |
앵무새를 반려동물로 키웠던 사람 중 가장 많이 알려졌던 것은 아마도 영국 수상이었던 ‘처칠’일 것이다. 그의 애완조였던 청금강 ‘찰리’는 주인이 죽고도 65년을 더 살아 104세 생일을 맞이했다고 한다. 또한, 평소 처칠이 즐겨하던 나치에 대한 욕을 배워 100살이 넘어서도 즐겨했다는 일화는 앵무새의 수명과 지능, 기억력이 얼마나 놀라운지 보여준다. 우리가 그들에게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준다면 이들은 그 곱절을 즐거움으로 보답한다.
물론 앵무새를 키우기 위해서는 강아지나 고양이보다 더 큰 인내가 필요하다. 강아지나 고양이만큼 인간과 함께한 역사가 길지 않기에, 아무리 순치된 앵무새라 할지라도 그 안에는 야성이 숨 쉬고 있다. (혹자는 작은 공룡이라고 부를 정도이다.) 이를 인정하지 않고 인간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따르기를 기대한 채 새를 입양한다면 분명 얼마 지나지 않아 실망하게 될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사람을 따르는 강아지와 달리 새는 사람을 포함한 자신보다 큰 모든 존재를 경계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거칠게 다루게 되면 앵무새의 공격성을 깨워, 이것이 외부로 향하면 사람을 공격하고, 내부로 향하면 자해를 하게 된다. 새는 본래 생태계 최 하단에 존재하며 오랜 기간 포식자의 먹이였기 때문에 방어본능이 발달하였다.
야생이라면 누군가가 괴롭힐 때 날아가 버리겠지만 인간과 사는 새는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방어를 위해 공격을 한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람도 앵무새도 불행할 수밖에 없다. 당신의 새가 당신을 괴롭힌다면 이는 무언가에 위협을 느끼거나 불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앵무새는 낙원의 동물이라고 한다. 태초에 아담과 이브가 낙원에 살던 시절, 인간과 모든 동물은 하나의 언어를 사용했지만 시간이 흘러 그 공통의 언어를 잊어버리게 되었다. 하지만 앵무새만큼은 그 태초언어를 기억하여 인간과 소통한다. 아름다운 외모와 높은 지능, 다양한 재주, 때로는 사람의 언어로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그 생명체를 보면 분명 천사를 닮은 이 존재들은 낙원에서 우리의 가장 친한 친구였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늘 우리보다 먼저 떠나는 반려동물로 인하여 새로운 동물을 입양하기 두렵다면, 색다르고 똑똑한 나만의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면, 당신에게는 앵무새가 필요한 것이다. 시중에 나온 책 중 앵무새 입문자 필독서에 해당하는 <날개 달린 아인슈타인(심용주 저, 2010)>과 <앵무새의 심리와 행동(보니 먼로 도안, 토마스 퀄킨부시 공저, 2012)>를 꼼꼼히 읽고 참을 인을 마음에 새긴 당신이라면 이 똑똑한 친구를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 한스마카우 하나를 비롯한 총 6마리의 앵무새가 주는 특별한 기쁨을 당신도 누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