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거탑’ UHD 리마스터링 제작기

‘하얀거탑’ UHD 리마스터링 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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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정모 MBC DI특수영상제작팀장

하얀거탑 리마스터링 세로

오래된 상자에서 먼지 낀 보물 하나를 꺼내 들다
드라마 <하얀거탑>이 라인업에 올랐다! 신년부터 갑작스러운 소식에 여러 사람이 분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파업의 여파로 미니시리즈의 라인업이 불투명한 가운데 드라마본부는 전격적으로 <하얀거탑>을 재방송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하얀거탑>은 드라마 본부 내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다시 보고 싶은 드라마의 상위권을 오르내릴 정도의 인기여서, 프라임 시간대의 재방송이라는 파격적인 편성과 함께 많은 기대를 모았습니다.
그리하여 드라마 <하얀거탑>의 리마스터링 제의를 받았을 때는 반가움과 걱정이 동시에 일었습니다. MBC 명작드라마를 다시 한번 만나게 되는 것은, 분명 한 사람의 시청자로서 즐겁고 기대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내에 보관된 자료는 디지베타 테이프에 녹화된 오래된 HD 방송본뿐이었고, 이를 인제스트하여 일차 모니터링 한 결과 그동안 쌓인 세월의 때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요새처럼 시네마 카메라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올드한 스타일로밖에 보일 수 없는 화면과 노이즈, 그리고 당시 초치기 제작으로 인해 군데군데 지우지 못한 마이크, 스태프 등의 NG컷들을 보니 손을 댈 곳이 한도 끝도 없어 보였습니다. 또한 촉박한 제작으로 충분한 DI를 거치지 못해 들쑥날쑥했던 컬러는 그때의 긴박했던 제작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더군다나 MBC 역사상 UHD 리마스터링 제작은 그 사례가 전혀 없던 터라, 하얀 백지 위에 새 그림을 그려야 하는 심정으로 작업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더 나은 영상 제작을 위한 시도
UHD 리마스터링은 단순히 해상도만 늘어나는 스케일업(scale up)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UHD 리마스터링 작업을 공식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해상도 증가와 더불어, 노이즈 제거, 컬러그레이딩 등 여러 가지 제반 작업을 거쳐 기존 HD 화질에서 개선된 UHD 영상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UHD 리마스터링된 제작물은 UHD 편성비율에 50% UHD 제작물로 인정받습니다. 통상적으로 UHD 리마스터링된 영상은 HD 영상에 비해 20~30%의 화질 개선 효과를 보인다고 합니다.

주어진 제작 기간이 너무 짧았기에 처음에는 UHD 영상 개선 작업을 외부 전문 업체에 의뢰하고, 저희 팀은 DI만 담당하는 계획을 마련했습니다. 리마스터링의 제작 가능성을 살펴보던 가운데, 저희 팀은 먼저 외부의 우수한 리마스터링 업체를 방문하였습니다. 그 중 4by4나 M-studio 등의 팀은 예전부터 리마스터링을 해 오시고 나름 훌륭한 솔루션을 가지고 계셨기에 저희도 그 능력을 인정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다르게 UHD 리마스터링은 정말 긴 제작 시간을 요구하였는데 평균적으로 편당 적게는 2주일에서 1달을 제작 시간으로 잡고 있었습니다. 그즈음 첫 방송의 일정이 확정되어 가고 있었고, 남은 시간은 1주일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급하게 준비한 외부업체와의 샘플 테스트도 내부적으로 제작 안정성에서 불가 판정을 받아 팀 내에서 온전한 솔루션을 찾아야 했습니다.

DI

그러던 중 다행스럽게도 최근 저희 팀은 색재현실과 스마트특수영상제작팀을 통합하여 “DI특수영상제작팀”으로 재편하였고, 이 리마스터링 작업은 새로운 DI특영팀에게 그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발휘할 첫 기회가 되었습니다. 특수영상제작실은 수년을 거친 VFX 작업을 통해 영상제작의 특별한 노하우를 축적해 왔고, 색재현실도 MBC 드라마 DI를 통해 그 실력을 갈고닦아 온 바였습니다. 더구나 평소 같았으면 미니시리즈 제작에 눈코 뜰 새 없이 작업을 하고 있어야 할 시기였으나, 정규 라인업의 부재로 오히려 전 팀원이 이 프로젝트에 달라붙을 수 있었습니다. 1주일 남짓한 시간을 두고 VFX팀은 화질 개선에 초점을 맞추어 밤낮없이 여러 가지 시도를 한 끝에 몇 가지 솔루션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Autodesk FLAME을 기반으로 노이즈 제거와 UHD 스케일업, 디테일 및 선명도 개선에 대한 몇 가지 방법을 개척하였고, 5명의 DI 컬러리스트들은 보다 현대적인 느낌의 컬러그레이딩 작업을 다시 하였습니다. VFX를 담당한 이재혁, 현광철, 이상헌, 석정은 감독님과 김대원, 홍병욱, 김은영 컬러리스트, 그리고 최종 DI를 검수한 DI Master 이종하 차장님, UHD 피니싱의 김규동 감독님 등 많은 분들이 최선을 다해 수고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시간은 여전히 모자랐고, 1편당 30시간이 넘는 렌더링 시간과 장비의 불안정한 성능으로 매일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습니다.

Finishing


첫 방송 일정에 맞춰라

이러한 빡빡한 제작 일정에도 불구하고 첫 방송의 최종 편집은 계속 수정이 들어갔습니다. 첫 방송에 대한 제작진의 부담도 컸었지만, 기존 1편이 70분이 넘는 분량이라 현재 방송 시간에 맞추려면 10분 이상을 들어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30분 간격으로 나눈 PCM의 적용으로 60분 1회차를 2회분으로 나누어 재편집을 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1회분은 시간에 쫓긴 끝에 방송 1일 전에야 UHD 완제편집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녹록지 않았습니다. HD 테이프 보관본 자체가 디지털 노이즈가 너무 많아, 완제 NLE 종편 중에 많은 노이즈 프레임을 발견하여 모두 CG 작업 후 인서트를 해야 했습니다. 또한 기존의 자막 스타일이 시대에 뒤떨어져, 수소문 끝에 당시 제작사에 감독판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인수받아 클린 컷으로 대체하며 새로 디자인한 자막을 적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감독판은 또 방송판과 컬러가 달라 또다시 DI를 재작업 해야 했습니다.

<하얀거탑>의 DI 컬러그레이딩 콘셉트는 ‘원작에 대한 충실성’과 ‘자연스러움’으로 삼았습니다. 과거의 카메라가 가지고 있던 붉은 색 몰림을 보정하면서 원작의 콘트라스트를 유지함과 동시에 부분적으로 과한 콘트라스트는 다양한 변화를 주었습니다. 다채로운 색의 발현을 목표하였고 극의 분위기에 따른 컬러의 재배치도 후반에서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시도하였습니다. 11년의 세월 동안 TV가 표현하는 색감과 현재의 트랜드도 달라져서 전체적인 콘트라스트와 채도도 약간 정비하였습니다.

영상뿐 아니라 사운드도 많은 손을 거쳐야 했습니다. 원본의 선명하지 못한 청음감을 사운드마스터실의 홍성지, 윤가영 사운드 디자이너가 하나하나 손보며 몇 번이고 믹싱을 다시 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음악감독과 연출자 안판석 감독님의 도움으로 HD 방송본이 가진 모노 BGM을 다시 스테레오 BGM으로 대체하여 개선된 음향을 준비하였습니다. 또한 CG실의 이성구 감독님을 비롯한 여러분께서 오프닝 등을 새로 디자인 해 주신 끝에 컨템포러리한 <하얀거탑>의 구색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첫 방송 전, 내부적으로 제작진 및 기술 스태프와 시사를 하였습니다. 다행히 결과물에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만족하셨고, 명작의 부활을 깨끗하고 선명한 화질로 경험하게 되어 많이 반가워 하셨습니다. 적어도 업계에서 목표하는 20~30%의 화질 개선은 이룬 것 같아 팀원들도 다행으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하얀거탑 UHD 리마스터드>는 1월 15일 시청자에게 새롭게 단장하여 다시 찾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vfx

시민들의 따뜻한 호응
작업을 하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이 있다면, 11년이 지나도 명작이 주는 재미는 절대 희석되지 않는구나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재미를 시청자도 동일하게 느껴주길 바랬습니다. 과연 시청자분들은 따뜻하게 호응하셨고 시청률과 화제성은 생각보다 열렬하였습니다. <하얀거탑>이 가진 팬덤은 아직도 유효하였으며 많은 분들이 반가워 하셨습니다. 몇몇 분은 이를 기점으로 더 많은 지난 명작들이 UHD 리마스터링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원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좀 더 시간이 있었으면 더욱 정밀하고 완성된 영상을 뽑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컸습니다. 제작현장이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는 항상 시간과 인력에 제한을 받기 때문에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야 했습니다.

UHD 리마스터링 Before & After

Before _ After
Before _ After

 

남겨진 숙제
현재 MBC의 주요 드라마는 모두 UHD로 촬영하며 DI도 UHD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동안 엔지니어 및 촬영감독, IT개발자 등 많은 유관 부서가 노력하여 UHD 생태계를 안정적으로 이루어 놓은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 그동안 안정적으로 UHD 재방송을 해 왔고, 제작 관행이 좀 더 개선된다면 UHD 드라마 제작은 좀 더 수월하게 진행될 것입니다. 그러나 올해 들어 두 배로 높아진 UHD 편성비율로 인해 UHD 제작물량이 증가하여, 근래 UHD 리마스터링이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만약 UHD 리마스터링이 제작 정례화된다면 반드시 전담팀을 구성하여 장비와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UHD 리마스터링 역시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하얀거탑>의 UHD 리마스터링은 명작의 화질 개선과 영상의 재해석이라는 점에서 분명히 가치가 있었습니다. 영화의 리마스터링처럼 한 컷 한 컷 최고의 완성도를 지향하고 싶은 욕심도 있으나, 끝없는 완성도를 지향한다는 것은 언제나 많은 시간과 인력을 필요로 했습니다. <하얀거탑 – UHD 리마스터드>는 현재 MBC의 인적, 물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방송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이끌어 낸 작품입니다. 그동안 꾸준히 제작해 온 VFX와 DI의 경험이 고스란히 리마스터링 제작에 투영되었으며, 재편된 DI특영팀의 특장점이 녹아든 첫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시청자들이 다시 한번 명작의 즐거움을 맛보게 되었다면, 저희 MBC DI특수영상제작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이 될 것 같습니다.

끝으로 보이지 않게 응원하고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이번에는 같이 일하지 못했지만 충분히 리마스터링의 가능성을 보여주신 4by4 및 M-studio 관계자분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새 집 짓기보다 헌 집 리모델링이 훨씬 까다롭고 어렵듯이 UHD 리마스터링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명작을 새롭게 만드는 UHD 리마스터링 작업은 분명히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좋은 작품들이 새롭게 다시 태어나 시청자와 만나게 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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