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규 칼럼: 당신의 부모는 AI 세상에 안녕하십니까? 2회]
안부 문자라는 침입자
: 부모의 통장을 무력화하는 ‘디지털 올가미’의 습격

존재하지 않는 유령과의 사투, ‘팬텀 해커’의 공포
미국 연방수사국(FBI, 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은 최근 시니어 세대의 은퇴 자금을 노린 이른바 ‘팬텀 해커(Phantom Hacker)’ 사기에 대해 강력한 경보를 발령했다. 이 수법은 단순히 기기를 해킹하는 기술적 범죄가 아니다. 부모 세대의 불안 심리를 정교하게 파고들어, 스스로 자산을 내어주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훨씬 더 잔혹하다.
폭스뉴스(Fox News)의 2025년 8월 24일 자 보도에 따르면1), FBI 로스앤젤레스 지부(FBI Los Angeles)는 사회관계망 서비스인 ‘X’를 통해 팬텀 해커 사기에 관한 알림을 게시하며 주의를 당부했다. 내용에 따르면 팬텀 해커 사기는 2024년부터 미국인들에게 1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입혔다. 특히 노인들을 정밀 타격하여 평생 저축한 돈을 한순간에 앗아간다는 점에서 그 피해의 깊이는 가늠하기 어렵다. 따뜻한 안부를 전하던 부모의 스마트폰이, 어느덧 일상을 위협하고 삶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정교한 심리적 올가미로 변질된 셈이다.
노후 자금을 앗아가는 심리 침투의 3단계 공정
FBI 인터넷범죄신고센터(IC3, Internet Crime Complaint Center)가 분석한 이 사기 수법은 부모의 판단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만드는 치밀한 3단계 각본으로 진행된다. 2)
첫 단계는 기술 지원팀 사칭이다. 범죄자는 유명 기업의 기술 지원팀을 가장해 팝업창이나 메일로 접근한 뒤, 가짜 바이러스 검사를 실행하며 기기가 해킹 위험에 처했다고 속인다. 이후 원격 제어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게 하여 부모의 금융 계좌 정보를 파악하고, 가장 자산이 많은 계좌를 타깃으로 삼는다.
두 번째 단계는 금융 기관 사칭이다. 은행원이나 중개인으로 위장한 공모자가 나타나 외국 해커의 침입을 경고하며,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연방준비제도 등 정부 기관이 관리하는 안전 계좌로 돈을 옮기라고 압박한다. 이때 범죄자는 피해자에게 송금의 진짜 이유를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라고 지시하며 철저히 고립시킨다.
마지막 단계는 정부 기관 사칭이다. 연방정부 직원을 자처하는 이들이 위조된 공식 서신까지 동원해 신뢰를 얻은 뒤, 자금이 안전해질 때까지 가명 계좌로 옮겨야 한다고 강조하며 평생 모아온 노후 자금을 해외로 송금하게 만든다.
편의를 위한 기술이 부모를 겨냥한 무기가 될 때
이 비극의 침입로는 역설적으로 일상의 편의를 돕던 기술에서 시작된다. 범죄자들이 부모의 은행 계좌를 장악하기 위해 활용하는 핵심 도구는 원격 지원 프로그램과 화면 공유 기능이다. 본래 이 기술들은 디지털 기기 조작에 서툰 부모를 위해 자녀들이 멀리서나마 도움을 드리기 위해 활용하던 소통의 도구였지만, 이제는 같은 기능이 부모의 문자 메시지와 인증번호, 금융 애플리케이션 화면까지 고스란히 드러나게 만드는 침입로로 변질되고 있다.
철옹성 같던 금융 보안망이 이토록 허무하게 무력화되는 이유는 스마트폰이 지닌 다중적 속성 때문이다. 오늘날 스마트폰은 단순한 통신 기기가 아니라 신분증이자 지갑이며, 은행 계좌와 공공 서비스가 연결된 개인의 디지털 금고다. 그러나 기술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운 시니어들에게 이 복잡한 기능의 집합은 편리한 도구이기보다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디지털 족쇄가 되기도 한다.
관계를 숙주 삼아 일상을 감염시키는 2차 사이버 위협
이러한 디지털 사기는 해외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개인정보 유출 이후 이를 악용한 2차 공격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Korea Internet & Security Agency)의 <2025년 사이버 위협 동향과 2026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3) 2025년 민간 분야 침해사고 신고 건수는 전년 대비 26.3% 증가한 2,383건에 달했다. 특히 2025년 하반기 발생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지능화된 2차 사이버 공격의 주요 자원이 되고 있다.
유출된 정보는 여러 데이터와 결합하면서 ‘피싱용 프로파일’로 재가공된다. 이후 범죄자는 ‘개인정보 유출 피해 보상’이나 ‘미수령 환불금 안내’를 빙자한 정교한 스미싱 문자를 보내 악성 링크를 클릭하도록 유도한다.
이렇게 감염된 스마트폰은 이른바 ‘포로 기기’가 된다. 사용자의 연락처에 저장된 가족과 지인에게 사기 메시지를 자동으로 전송하는 범죄 도구로 변하는 것이다. 평생 정과 신의를 지키며 살아온 시니어들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발송된 사기 문자가 주변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은 금전적 손실보다 더 깊은 상처로 남는다.
기술의 파고를 넘는 지혜, 시니어를 위한 ‘의심의 문해력’
결국 우리는 부모에게 단순히 “조심하라”는 경고를 반복하는 수준을 넘어, 시니어를 위한 새로운 형태의 AI 리터러시를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지금까지의 디지털 교육이 스마트폰 사용법과 앱 조작 같은 기능적 능력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정보의 의도와 맥락을 읽어내는 ‘의심의 문해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범죄가 기술의 얼굴을 하고 부모의 신뢰를 파고드는 시대에, 가장 강력한 방어 장치는 복잡한 보안 기술이 아니라 “이 메시지는 왜 지금 나에게 왔는가”라고 스스로 묻는 질문의 힘이다. 누가 보내는지, 무엇을 하도록 유도하는지, 그리고 왜 지금 행동을 요구하는지를 한 번 더 따져보는 능력이다.
기술이 세상을 연결하는 가느다란 실이라면, 그 실이 부모의 목과 통장을 죄는 올가미가 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는 시니어들이 기술의 사용자에 머무르지 않고 정보를 의심하고 해석할 수 있는 주체가 되도록 돕는 새로운 AI 리터러시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AI 시대에 부모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보호 장치가 될 것이다.
1) www.foxnews.com/us/fbi-warns-seniors-about-billion-dollar-scam-draining-retirement-funds-expert-says-ai-driving
2) www.ic3.gov/PSA/2023/PSA230929
3) www.boho.or.kr/kr/bbs/view.do?bbsId=B0000127&pageIndex=1&nttId=71951&menuNo=205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