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둘 아빠의 생존기 – 아이들과 함께 또다시 하루를 보내며

애 둘 아빠의 생존기 – 아이들과 함께 또다시 하루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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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 아니, 새벽 6시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예전에는 그 신성한 고요를 깨는 불경스러운 일을 저지르지 않았지만, 이제는 고요는커녕 우렁찬 아기 울음소리와 함께 그 시간을 깨운다. 이 아기들은 다윗과 같은 인물이 되려는 걸까? 시편 57편의 “일어나 새벽을 깨우리라”라는 말씀을 실천하는 건 좋지만, 이미 글러먹은 나는 그럴 필요 없는데.

경기 일으키듯 아침을 맞으면 일단 작은 애의 입을 막기 위해 얼른 우유를 타기 시작한다. 왼팔로 감아 안아 붙들고 오른손으로 번개 같은 속도로 물을 덥히고 분유를 우유병에 넣는다. 금가루 같은 분유 가루를 흘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최 모 셰프와 같은 허세는 금물이다. 우유병에 물을 넣으면 이젠 손목의 스냅이 장기를 발휘할 때다. 첫째 아이가 어렸을 때에는 어떤 책에 나와 있던 대로 두 손으로 우유병을 비비면서 분유를 녹였지만, 리소스가 부족한 지금 시점에는 기인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제 잠시 행복이 찾아온다. 아기는 젖꼭지가 입에 들어오는 순간 모든 소음을 멈춘다. 자동차는 기름을 넣으면 힘이 생기고 기름이 부족하면 빌빌거리지만, 아기는 배가 부르면 조용해지고 배가 고프면 소리가 커지는 리버스 시스템(reverse syste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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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이제 첫째가 발동을 걸 때가 됐다. 이 아이는 일어나면 무조건 엄마를 찾을 것이다. 물론 다행스러운 일이다. 둘째는 배가 불러 아침잠(혹은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라, 나는 계속 아이를 안고 앉아있기만 하면 된다. 역시나 곧 첫째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다시 재우려는 아기 엄마의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린다. 성공 확률은? 신기하게도 시간이 갈수록 확률이 높아진다. 이제 일찍 깨어나도 별 볼일 없다는 것을 아는 게지. 만약 이 아이에게 일기를 쓰라고 한다면 (아직 한글을 읽지도 못하지만) “오늘은 어제와 같음”이라고 쓸 수밖에 없을 거다. 오늘이 어제와 다를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꿈나라에 가서 재미난 꿈을 꾸는 것이다. 동화 같은 꿈. 첫째는 책을 너무 좋아해서 수십 개의 (어쩌면 백이 넘을지도 모르는) 동화를 섭렵하고 있기에 분명 그런 꿈을 꿀 것이다. 그래서 글로리아 밴더빌트(Gloria Vanderbilt: *1924)는 ‘동화’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나보다. “There once was a child / Living everyday / Expecting tomorrow / To be different from today.” 매일 매일 다르다는 것, 이것이 아이들이 꿈꾸는 세계다. 물론 이렇게 보면 나는 빵점에 가까운 아빠다.

한 시간을 버티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30분이면 싫든 좋든 네 식구의 새로운 하루를 맞아야 한다. 지금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침 식사다. 나는 요리를 끔찍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아기 엄마의 몫이다. 요색남이 뜨는 시대에 왜 요리를 싫어하냐고?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것은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밥을 하고 먹고 설거지하는 기나긴 시간은 아깝기 그지없다. 그 시간에 책이라도 더 보자! 엄청나게 재수 없는 이 이야기는 사실 아기가 없을 때까지 유효했다. 하지만 애 보느라 책을 읽을 수 없는 지금은 새로운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애 보느라 요리를 할 수 없는 것으로 결정했다.

나의 시간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다른 사람의 시간도 소중하기에, 애기 엄마는 참 간단하게(?) 아침을 준비하는 것을 허용한다. 사실 나는 상관이 없지만, 문제는 같은 밥을 먹어야 하는 첫째에게 있다. 이 빼빼마른 아이는 예상했듯이 식사를 거부한다. 결국 아이를 위한 또 다른 메뉴를 준비해야 하고, 결국 그녀는 많은 시간을 요리에 할애하게 된다. 하지만 어차피 책을 볼 수 없는데 뭘…….

이렇게 되면 설거지는 내 차지가 된다. 회사에서는 결자해지가 상식처럼 되어있지만, 가정에서는 ‘결자’(結者: 일을 벌인 자)가 ‘해지’(解之: 그것을 풀어내는)하는 경우가 드물다. 보통 아내가 결자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나는 상황을 보아가며 해지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다. 그래서 요즘 행복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서 온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되었다. 그렇다, 바로 ‘백수건달’(白手乾達)이 행복의 길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할 일 없는 부랑자에게 ‘건달’이라는 말을 쓰지만, 사실 이 말을 ‘하늘에 다다른 자’를 말한다. ‘백수’, 즉 손에 쥔 것이 없어야 ‘건달’, 즉 하늘에 다다른 수 있다는 도가적인 사상을 담고 있는 것이다. 사실, 누군가 진정한 백수건달로 살아간다면 주변 사람들이 힘들기는 할 거다.

DSC_0312그런데 요즘에는 설거지가 좋다. 왜냐구? 그 시간만큼은 두 손에서 아이를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미운 것은 아니지만, 커가면서 느끼는 중량감도 그렇거니와 지능적 대화수법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것도 참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프로그래머 출신으로서 홀로 문제에 대응하고 풀어냈을 때 느끼는 쾌감에 살아갔던 모습이 몸에 배어서일 수도 있다. 설거지는 주어진 문제에 오직 홀로 대응하고 하나하나 풀어간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오히려 더 좋은 점은, 반드시 어느 시간 안에 풀린다는 것이다! 버그 하나 잡기 위해 며칠을 고민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대학원에 다닐 때 버그 잡느라 무려 두 달을 싸맸던 적이 있었다. 어떤 문제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학교를 그만두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했으니, 58kg에 머물렀던 몸무게 살이 더 붙지를 못했다. 그때 가장 부러워했던 사람이 바로 청소 아주머니였다. 몸이 힘들고 능력의 성장은 크지 않지만, 어쨌든 노력하면 마무리가 된다. 가장 부러운 직업의 덕목이 아닐 수 없다.

두 아이가 다 일어나고 식사도 했겠다, 이젠 무얼 하지? 이벤트 기획사들은 매번 고객이 바뀌니 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해서 써먹을 수 있겠지만, 매일매일 동일한 고객에게는 통하지 않을 성 싶다. 나나 애기 엄마나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나가는 것은 귀찮다. 사실 나가는 것이 귀찮다기 보다는 나가기 위해 장소를 정하는 문제나, 나가기 위해 아이들을 준비시키는 것은 생각보다 끔찍한 일이다. 특히 아직 우유와 이유식을 먹는 둘째와 함께 나가려고 하면 ‘캐디’ 한 명이 더 필요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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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때에는 장난감을 풀어놓거나, 책을 풀어놓거나, 유아용 영상을 보여주거나 등등이 선택된다. 아이가 한 명이라면 이 방법들은 그리 나쁘지 않다. 하지만 둘이라면, 특히 아들이 둘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장난감을 풀어놓으면 둘은 곧 전쟁에 돌입한다. 일방적으로 첫째가 둘째의 것을 빼앗고, 심지어 둘째에게 주기 위해 아빠 손에 든 것까지 빼앗아 간다. 조카들로부터 비슷한 상황을 봤었기 때문에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둘째와 무엇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엄습할 뿐이다.

책은 첫째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둘째가 돌에 가까워지면서 이 역시 전쟁 양상으로 가고 있다. 특정 책의 이야기를 어렴풋이 파악하게 된 둘째는 그 책을 공략하고, 첫째는 둘째를 골려주기 위해 그 책을 빼앗는 상황이 일반화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영상은 싸움 없이 보는 편이라 분쟁 시 좋은 해결책이 되곤 한다. 하지만 아동학을 전공한 아내는 하루 두 시간 이내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전문가(아내)의 말에 따르면, TV가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이유는 상호 자극 없이 일방적인 자극만 주어지기 때문에 아이의 지능 발달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터랙션의 끝판왕 스마트폰은 아이에게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스마트폰은 자극에 대한 반응이 너무 빨라 매사에 기다리지 못하는 인내심이 없는 아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전보다 평화를 더 사랑하게 된 나는 아내가 없으면 평화의 도구를 전격적으로 즐겨 활용하는 편이다. 애들에게 이런 문제가 생기면 전적으로 내 책임일 수도 있겠지만, 뭐, 나 혼자 있는 경우는 얼마 되지 않으니 괜찮겠지.

기나긴 아침이 지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시간은 우선 밥이 정해져있는 둘째부터 시작한다. 배달 오는 이유식과 우유. 간단히 조제(?)해서 먹이면 끝난다. 설거지도 거의 없다. 내가 꿈꾸는 세계는 바로 이런 것이다. 그래서 점심 먹을 때는 자처하여 둘째를 맡는다. 배달 온 이유식을 중탕으로 덥히고 고루 섞어준 후 한 입씩 먹인다. 꿀꺽꿀꺽 받아먹는 모습이 둘째의 가장 귀여운 모습 중 하나이다. 아이를 기르는 기쁨이란 건 바로 이런데 있지 않을까 싶다. 말 잘 듣는 그런 모습. 그런데 요즘 시간이 갈수록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기 의자가 앉아있는 것을 점점 견디지 못하고 밥을 거부하고 있다. 돌도 안됐는데 벌써 미운 짓이란 말인가! 제법 몸을 움직이게 되어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여기 저러 돌아다니면서 밥 먹는 ‘못된’ 형아의 모습을 봐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럴 때에는 무념무상으로 밥을 밀어 넣는 수밖에 없다. 어쨌든 첫째가 먹었던 양보다는 많이 먹어서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위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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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첫째의 차례다. 하하! 내가 둘째는 해치웠으므로 첫째는 아내가 처리할 것이다. 첫째는 나랑 비슷해서 밥 먹는 시간을 견디질 못한다. 뭔가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 뭔가는 상황에 따라 다른데, 요즘에는 스티커북이나 색칠하기, 미로 찾기, 다른 그림 찾기 등 액티비티를 수행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런 걸 참 좋아한다. 다행스러운 일이지. 평화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그 책들이 생각보다 비싸다는 것이다. 한 권에 5천~8천 원에 이르는 이 일회용 책들을 하루에 하나씩, 혹은 위기 상황에서는 두 권 이상 비닐을 뜯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한 달에 드는 비용이 대충 계산되겠지? 클래식 음악 전문가인 내가 요즘 음악 CD를 구입하지 않는, 아니 못 하는 첫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이런 책 한 권의 첫 페이지에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책의 종류가 많지 않아 했던 것을 또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도 있지만, 그만큼 컸으니 당연한 모습이기도 하다.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때임이 분명하다.

두 아이가 점심을 먹고, 우리 부부도 어느 샌가 점심이 먹어진 상태이다. 뭘 먹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오후에는 무얼 하지? 오후는 오전보다 기니까 나가보는 것을 기획해보도록 하자. 둘째는 놔두고 첫째를 데리고 나가보는 것으로 한다. 우선 축구를 제안해본다. 조금 걸어 나가면 안양천 강가에서 공을 찰 수 있는 곳이 있다. 지난번에 꽤 좋아했던 것 같다. 공이 물에 빠지면 어떻하냐구? 다행히도 높이 펜스가 쳐져 있어서 그럴 걱정은 없다. “아빠랑 공 차러 가자!” 어라? 이 아이는 시큰둥하다. “싫어.” 이 아이가 요즘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은 ‘싫어’와 ‘아니야’. 나의 첫째 아들 ‘송싫어’ 군은 우선 ‘싫어’라고 말한 후 생각해보고 답을 확정하거나 정정한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제안하기로 한다. “예전에 재밌게 놀았잖아. 거기 가자.” 하지만 예상외로 답이 빨리 돌아온다. “아니야.” 이 아이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혹은 억지로라도 끌고나가기 위해 드는 노력과 비용은 그냥 집에서 노는 노력과 비용과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에 다른 제안을 해보기로 한다. “놀이방 갈래?” 마을버스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구청에는 누구나 저렴한 비용에 마음껏 놀 수 있는 놀이방이 있다. 문제가 있는 장남감이 적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할 만한 것들이 있는데다 상업지구에 있는 바람에 아이들이 매우 없는 편이어서 쾌적하게 놀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자체 기획한 행사가 진행될 경우 개인은 방문해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번 당해본 사람은 또다시 발길을 옮기기가 꺼려지게 되는 무언가가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 제안을 해본다. 바로 블록방이다. 근처 마트에 있는 어린이 블록방은 첫째가 좋아하는 곳 중에 하나다. 이곳을 제안하면 백발백중이다. 우선적 부정 발언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나로서는 몇 가지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놀이방보다 훨씬 비싸고 이용 시간도 짧다. 비용을 계산하자면 거의 10배 이상 비싸다. 둘째, 경우에 따라 아이들이 붐비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되면 분쟁을 조정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콧물을 질질 흘리고 다니는 아이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방어해야 한다. 그들의 부모도 같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괜히 부모들의 싸움으로 번지지 않도록 분쟁 조정 수위도 조절해야 한다.

그래도 일단 나가기로 한다. 아이에게 외출복을 입히는 것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지만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을 가는 경우라면 협조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리고 심지어 엄마에게 다녀오겠다는 인사까지 한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사히 나와 버스에 오른다. 이젠 홀로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한다. 왜 그랬을까 생각도 해본다. 그냥 집에 있으면 무료하더라도 강호의 긴장을 겪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지만 돌이킬 수는 없다. 마트로 가는 버스는 자주 오는 버스가 아니라서 앉는 자리가 거의 없다. 그래서 왼손으로 감아 안고 서서 타는 경우도 많다. 아이를 내려놓았다가는 펄럭이는 깃발처럼 버스 운전기사 오른발에 맞춰 춤을 추게 될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갑자기 한두 사람이 일어나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아닌가! 내가 자리를 양보받다니. 세상이 이러쿵저러쿵 자조(自嘲)적으로 말해왔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세상은 아직 따뜻한 것이었다. 여러분도 한번 해보시길!

블록방에 오게 되면 이제 거기 있는 사물들을 가지고 같이 놀면 된다. 앞에서 말했던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면서 말이다. 시간은 딱 한 시간이다. 시간을 넘으면 추가비용을 내야하기 때문에 수시로 시각을 체크하는 것은 필수다. 보통 아이들은 이거 했다가 저거 했다가 하기 때문에 한 시간 내로 모두 한 번쯤은 만져봐야 나올 때 수월하다. 만약 한 가지에 몰입한 나머지 빠뜨린 것이 있다면, 한 시간을 지키기가 어려울 수가 있다.

DSC_0324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나를 재충전하는 시간을 갖도록 한다. 모처럼 밖에 나왔으니 카페에 앉아 무려 원두로 만든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이다. 인스턴트 믹스는 가라! 아이에게는 아이스크림을 먹이기로 한다. 아이스크림도 아이 엄마가 없을 때 내가 종종 활용하는 평화의 도구이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순간만은 고분고분한 천사가 된다. 이때 나는 여러 심문을 자행한다. 그 때 왜 울었느냐, 그 때 동생을 왜 때렸느냐, 교회에 누가 제일 좋으냐 등등. 최근에 ‘초아’가 좋다고 실토했다. 아, AOA의 초아? 아빠도 좋아하지. 물론 비슷한 이름의 다른 아이를 말하는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 말대로라면 아빠는 승낙하마.

이제 집에 돌아왔다. 밖에 나갔다 왔으니 무조건 목욕 타임이다. 목욕을 누가 시킬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에는 미묘한 긴장이 흐른다. 결국 가위바위보로 정하기로 한다. 대부분 내가 이기지만, 사실 별로 쓸모없는 짓이다. 첫째가 지명하여 부르기 때문이다. 그 대상은 물론 엄마다. 아내는 목욕은 아빠랑 하는 것이라고 세뇌시키지만 강인한 멘탈을 지닌 이 천재적인 꼬마는 절대로 세뇌되지 않는다. 그래서 아내는 요즘에는 세뇌보다는 협상으로 전략을 바꿨다. 아빠랑 목욕하면 사탕을 주겠다는 등. 나도 뭔가 해볼까 생각하지만 그냥 말기로 한다.

이제 낮잠을 한번 잘 만도 한데 첫째는 애써 눈을 부릅뜬다. 나는 졸려서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가 되지만 나도 버텨야 한다. 언젠가 나와 첫째만 집에 있을 때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떠보니 아무도 없지 않은가. 방마다 돌아다니며 찾아보니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고 있더라. 벌써 부모의 눈을 피해 몰래 하고 싶은 것이 있나보다. 그러니 버틸 수밖에.

어느덧 주어진 원고량을 채웠다. 가정이나 직장이나 인간관계로 이뤄진 모임이다 보니 노동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저녁 이후의 생활은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이어서 얘기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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