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그리고 크게 보라
비스마르크의 독일 통일 전략
벌모 벌교 벌병 공성(伐謀 伐交 伐兵 攻城)
『손자(孫子) 모공 제3편』
“휘이잉∼” 무지막지하게 큰 돌들이 하늘을 난다. “꽝! 꽝!” 순식간에 와르르 성벽이 무너진다. 커다란 방패들을 위와 옆으로 맞댄 병사들이 마치 거북 등과 같은 모양을 하고 성벽을 향해 전진한다. 용감한 병사들은 쐐기 모양의 커다란 나무를 들고 성문을 향해 돌진한다. 긴 사다리를 성벽에 기대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들을 향해 성안의 병사들은 뜨거운 물과 기름을 쏟아붓는다. 성벽에 걸쳐진 사다리를 걷어찬다. 수많은 병사들이 성벽을 타고 오르다가 개미처럼 떨어진다. 온몸에 불이 붙어 이리저리 뒹굴며 비명을 지른다. 검붉은 화염과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뒤덮는다. 지옥이 따로 없다. 자, 이러한 장면은 어디에서 볼 수 있는가? 그렇다. 성을 공격하는 공성전(攻城戰)에서 볼 수 있다. 2005년 제작된 영화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에는 공성전 장면이 아주 잘 묘사돼 있다. 영화는 1187년 제2차 십자군전쟁 당시 무슬림 세계의 맹주 살라딘(Saladin)의 공격을 받아 끝까지 저항하는 예루살렘 성의 숨 막히는 공방전을 그렸다. 이러한 공성은 어느 편이 이기든지 피해가 가장 많은 전쟁의 형태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이런 전쟁은 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꾀가 필요하다. 꾀를 가지면 피를 흘리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다.
꾀로써 멋지게 성공한 좋은 예가 있다. 철혈재상(鐵血宰相)이라 불린 비스마르크(Bismarck)의 외교술이다. 비스마르크는 오늘날 독일 통일의 기초를 마련한 이른바 ‘외교의 달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한 독일연방만이 유일하게 독일의 미래를 보장해줄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독일 통일에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되면 아무리 정적(政敵)일지라도 자기편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는 사회주의자를 혐오하면서도 1863년 독일 최초의 사회당인 독일노동자연맹을 창설한 페르디난트 라살과도 친분을 쌓았다. 독일 통일을 이루기 위해 프로이센이 상대해야만 하는 주변국은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랑스였다. 그는 먼저 오스트리아를 겨냥했다.
당시 헝가리를 통치하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에 항거하는 헝가리 혁명주의자들과도 깊숙이 접촉해 오스트리아에 불안감을 심어주었다. 러시아와는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외교술을 발휘했는데, 1863년 1월 폴란드에서 항거가 발생하자 비스마르크는 재빨리 러시아 편을 들어 지지했다. 훗날 독일 통일의 든든한 후원자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음으로 프랑스 역시 우군으로 끌어들이는 외교술을 발휘했다. 1865년 프랑스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함으로써 우의를 다졌고, 나폴레옹 3세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이렇게 하여 강력한 이웃인 러시아와 프랑스에게 내정불간섭을 보장받자 드디어 비스마르크는 1866년 6월 17일 선전포고를 하고 오스트리아를 공격했다. 보오전쟁(普墺戰爭)이다. 이 전쟁에서 프로이센이 승리했다. 이때 프로이센의 군부는 오스트리아를 계속 공격해 전멸시킬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질 경우 다른 나라의 개입이 있을 것을 우려한 비스마르크는 전쟁을 마무리했다. 이제 비스마르크의 유일한 걸림돌은 프랑스였다. 1870년 공석 중인 스페인 왕위 계승문제가 발생하자 비스마르크는 의도적으로 프랑스가 꺼리는 인물을 지지하고, 7월 14일 프랑스와 전쟁을 시작한다. 보불전쟁(普佛戰爭)이다. 비스마르크의 외교적 수완으로 프로이센의 우군이 된 남부독일국가들이 즉각 전쟁에 가담했고 결국 프랑스는 무릎을 꿇었다. 1871년 1월 18일 포성이 아직도 그치지 않은 가운데 베르사유 궁전에서는 빌헬름 1세를 황제로 한 독일 통일이 선포되었다. 독일의 통일은 외교의 달인 비스마르크에 의한 치밀하고도 원대한 외교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손자병법 모공(謀攻) 제3편에 보면 전쟁을 하는 방법 네 가지가 나온다. 벌모(伐謀), 벌교(伐交), 벌병(伐兵) 그리고 공성(攻城)이다.
벌모라는 것은 상대방의 꾀를 꺾어버리는 것이다. 아예 내게 덤빌 생각조차 먹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서 당연히 이렇게만 된다면 가장 좋다.
벌교는 상대방의 주변에 있는 동맹관계를 제거해버리는 것이다. 비스마르크가 보여준 외교술이 그것이다. 이 단계에서도 가능하다면 적의 동맹국을 잘 구슬려서 내 편으로 끌어들인다면 더 좋다.
벌병은 병력을 보내어 서로 싸우게 하는 것이다. 실제적인 전쟁의 모습이다. 이때부터 피도 흘리고 건물도 깨어지고 눈에 보이는 피해가 발생한다.
공성은 성에 있는 적을 공격하는 것이다. 가장 많은 피해가 발생되며 가장 어렵게 진행되는 전쟁이다.
전쟁은 가급적이면 실제적인 피를 흘리지 않는 벌모와 벌교 단계에서 마무리하면 좋다.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적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최악의 전쟁단계인 공성까지 갈 경우에는 대부분 자존심이 걸린 싸움이 많다. 이쯤 가면 돈이 문제가 아니다. 돈이 더 들어가더라도 끝까지 법정소송까지 가는 사람들은 바로 이 공성의 단계에 갔을 때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람과 맞붙어 싸운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어찌해서 이긴다 하더라도 나도 엄청나게 깨지고 피해를 본다. 돈도 많이 잃는다. 세상에 제일 어리석은 사람은 공성까지 가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전략도 없고 꾀도 없는 것이다. 비스마르크처럼 멀리 보고 크게 볼 줄 알아야 한다. 그게 현명하게 전쟁을 하는 방법이다.
伐謀 伐交 伐兵 攻城
벌모 벌교 벌병 공성
꾀를 치고, 동맹을 치고, 병력을 치고, 성을 친다
현명하게 싸우는 방법을 생각하면서 꼭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굴복(屈服)과 심복(心服)에 대한 것이다. 현명한 사람은 굴복보다는 심복을 이끌 수 있어야 한다.
굴복은 힘이 약할 때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숙이는 것이다. 특히 회사나 조직에 속한 사람들은 입이 포도청이라 대체로 굴복의 자세로 살아가기 쉽다. 따라서 힘이 강해지거나 상황이 바뀌면 언제라도 다시 고개를 쳐들 수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항복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심복은 다르다.
심복은 심열성복(心悅誠服)의 준말로서 충심(衷心)으로 기뻐하며 성심(誠心)을 다하여 순종(順從)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항복을 거둘 때 진정한 승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비스마르크가 보오전쟁에서 이기고도 오스트리아의 땅을 한 치도 요구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에게 굴욕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심복의 의미를 잘 알았던 비스마르크다운 행동이다. 기업의 상사들이나 아니면 창구에서 일을 하는 사원들이라도 이런 심복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가급적이면 서로 다투지 않고 일을 해결해나가도록 하자.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다투게 된다면 반드시 이겨라. 이기면 해적도 영웅이 되고 해적선도 전설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굴복보다는 심복을 얻도록 하자. 그러나 명심하자. 때에 따라서는 지는 것이, 아니 져주는 것이 이기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역설적(逆說的)인 사실을.
당장의 성과보다도 멀리 오랫동안의 이익을 보자
伐 謀 伐 交 伐 兵 攻 城
칠 벌 꾀 모 칠 벌 사귈 교 칠 벌 군사 병 칠 공 성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