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나게 일하고 있는가?
척계광의 황서도 전투
택인이임세(能擇人而任勢)― 『손자(孫子) 병세 제5편』
10여 년간 80여 차례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명나라의 장군. 4, 5천에 불과한 군대로 2만여 명의 왜구와 대치하기도 했지만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던 명장. 만리장성을 증축하여 북방 민족의 공격을 막아낸 인물. 오합지졸의 병사들을 조직혁신과 군사개혁으로 천하무적 정병으로 만든 인물. 수명을 다한 명나라의 멸망을 늦추었던 인물. 기효신서라는 책을 남긴 인물. 그는 누구인가? 바로 척계광 장군이다. 중국에 가면 만리장성에서뿐만 아니라 수많은 곳에서 그의 동상을 볼 수 있다. 오늘날에도 중국 사람들은 그를 애국영웅이라고 부른다. 중국 복건의 우산에 있는 척공사(戚公祠)에는 척계광의 조각상을 참배하러 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길 새 없다.
황서도 전투는 1553년 척계광 장군이 왜구의 근거지인 황서도를 공격하여 이를 전멸시킨 전투로 유명하다. 왜구는 명나라와 일본의 중앙정부가 통제능력을 상실하자 중국 연안까지 들어와 약탈을 일삼았다. 이들의 약탈 행위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급기야 연안뿐만 아니라 내륙에 있는 성까지도 괴롭히기에 이르렀다. 1553년 8월 왜구들이 절강성에 들어와 벌였던 참극은 처참했다. 이들은 항주에서 절강 서쪽을 지나 안휘성 남쪽을 유린한 다음 남경에 진입했다. 그 후 또다시 표양 등지에 상륙해 절강 일대의 성들을 짓밟으면서 80여 일에 걸쳐 4천 명 이상을 잔인하게 죽였다. 그런데 만행을 저지른 왜구의 병력이 겨우 100명도 안 된다는 사실에 명나라는 충격을 받았다. 그만큼 명나라가 부패하면서 국방체제가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가정황제 후반에 이르러 부패한 관리들을 쫓아내고 청렴한 대신들이 등용되면서 본격적인 왜구토벌이 시작됐다. 이때 왜구토벌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 바로 척가군을 이끌고 있던 척계광이다.
척계광은 불과 16세 때 “나의 소원은 관직이 아니라 바다를 평정하는 것”이라는 시를 지을 정도로 왜구 소탕에 남다른 사명이 있었다. 여러 차례 왜구를 소탕했던 척계광은 드디어 황서도를 공격하기로 결심했다. 그곳은 가장 잔인하고 강력한 왜구의 본거지였다. 왜구에 비해 수군이 약했던 명나라는 비록 작은 섬이었어도 감히 공격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황서도를 공격하기 위해 이리저리 관찰하던 척계광은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곳이 조수 간만의 차가 높아질 때면 썰물 때 섬까지 바닥이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바로 ‘모세의 기적’이었다. 그러나 땅이 드러나도 그 바닥이 진흙과 뻘이어서 마음대로 다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병사에게 짊어질 수 있는 만큼의 마른 풀을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드디어 시간이 되자 바다가 갈라지면서 바닥을 드러냈다. 때를 맞추어 척계광은 총공격을 명령했다. 병사들은 진흙탕과 뻘에 마른 풀을 깔면서 전진하기 시작했다. “이게 뭐냐!” 섬으로 올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왜구들은 전혀 대비도 못 한 채 공격을 받았다. 결국 황서도에 주둔했던 왜구 2천600명 전원이 소탕되고 말았다. 가장 잔인하고 강력했던 황서도의 왜구들이 이렇게 소탕되자 그 주변의 다른 왜구들은 쉽게 소탕되었다.
1566년이 되자 마침내 척계광은 중국을 괴롭히던 왜구를 완전히 토벌하는 데 성공했다. 왜구를 토벌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척계광의 부대는 척가군이라 불리며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손자병법 병세(兵勢) 제5편에 보면 “잘 싸우는 자는 부대전체에서 나오는 세에서 구하지 개인에게서 책임을 묻지 않는다(求之於勢 不責於人). 사람을 택하여 세를 발휘하게 한다(能擇人而任勢).”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명확하다. 적재적소를 통해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만들고, 조직시스템을 통해 조성되는 기세를 활용한다는 말이다.
척계광은 정예의 부대를 만들기 위해 그만의 방식을 개발했다. 항주에서 60마일가량 떨어진 이우 지역에서 지원자 3천 명을 모집했는데 그 선발기준이 가히 개혁적이다.
첫째는, 얼굴이 검고 키가 크고 장대하며, 농사지은 기색이 있는 사람을 뽑았다.
둘째는, 싸움의 경험이 여러 번 있지만 아직 제대로 공을 세우지 못한 사람을 뽑았다.
단 도시사람의 약삭빠른 사람은 뽑지 않았으며, 충성심이 있고 완력이 강한 사람을 뽑았다.
그리고 이렇게 선발된 병사들을 원앙진(鴛鴦陣)이라 불리는 독특한 진형으로 훈련시켰다.
원앙진은 분대장을 포함하여 도합 12명으로 구성된 진형이다. 원앙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원앙은 암수 한 쌍 중 한 마리가 죽으면 다른 한 마리도 따라 죽는다는 전설에 따라 이름을 지었다. 만약 전투 도중 대장이 전사하고 패배할 경우 대장이 전사한 원앙진 분대의 나머지 생존자들도 모조리 처형했다. 그러므로 원앙진을 이루고 있는 각개병사들은 대장이 전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전투 내내 죽기 아니면 살기로 적과 싸워야만 했다. 척가군의 장병들은 철저한 정신무장을 했다.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자는 가차 없이 처단했다. 심지어 척계광의 아들, 친척까지도 목을 베었다고 전해진다.
원앙진의 12명은 철저하게 개인의 특성을 고려해서 편성했다. 각자의 신체조건과 성격에 따라 그에 가장 맞는 직책을 부여한 것이다. 깃발을 든 분대장 외에 나이가 어리고 몸집이 중간이며 신체가 유연한 자 두 명을 제1 제2로 삼아서 등패수로 충원하고, 나이가 장성하고 신체가 커서 힘이 센 두 사람은 제3 제4로 삼아서 낭선수로 충원하며, 정신과 골력이 있는 네 명을 제5 제6 제7 제8로 삼아서 장창수로 충원하고, 살기와 담력이 있는 자 두 명을 제9 제10으로 삼아서 당파수로 충원하며, 사람이 용렬하고 녹록하여 남의 부하가 되기를 좋아하는 자 한 명을 제11로 삼아서 화병(火兵)으로 충원했다. 그야말로 개인의 조건에 맞추어 가장 잘 싸울 수 있도록 한 적재적소다. 얼마나 신나게 싸우겠는가.
원앙진은 그동안 개인무예중심의 군사체계를 집단전술체계로 바꾸어 놓았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개인의 능력과 시스템의 능력을 조화시켜 그 능력을 극대화했다. 화기와 장창과 단검을 유기적으로 협력시켜 12명이 열배, 백배의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3천여 명으로 구성된 이 신군(新軍)은 모든 전투에서 승리를 거듭하여 국민의 칭송을 받았는데 사람들은 이 군대를 척계광의 군대라고 해서 ‘척가군(戚家軍)’이라 불렀다. 명나라의 척가군은 후일 임진왜란에도 참전해서 평양성 탈환 시에 큰 활약을 한다.
能 擇 人 而 任 勢
능 택 인 이 임 세
사람을 택하여 세를 발휘하게 한다
우리는 적재적소(適材適所)라는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사전적인 이 의미는 ‘어떤 일을 맡기기에 알맞은 재능을 가진 사람을 알맞은 자리에 씀’이라는 뜻이다. 즉 먼저 ‘사람’을 선택하고 ‘자리’에 넣는 것이다. 그런데 적재적소가 아니라 ‘적소적재(適所適材)’가 되면 어떨까? 먼저 ‘자리’를 정하고 그리고 그 자리에 걸맞은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적소적재가 더 현실적일지 모른다. 예를 들면 지금 회사에 영업부장 자리가 하나 비었다. ‘자리’가 빈 것이다. 그래서 영업부장에 걸맞은 ‘사람’을 뽑는 것이다. 이게 순서적으로 볼 때 맞을 것 같다. 만약에 적재적소라면 어떨까? 먼저 ‘사람’부터 뽑아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무슨 ‘자리’를 줄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얘기다. 척계광이 원앙진을 편성할 때도 먼저 12명의 ‘자리’의 역할을 확정했다. 그리고 그에 딱 맞는 ‘사람’을 뽑아 넣었다. 조직을 관리하는 책임자들은 이 기회에 적재적소와 적소적재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면 좋겠다.
회사 내에 흐르고 있는 세(勢)는 매우 중요하다. 왠지 모르게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가 있는가? 무기력하고 시간만 때우려는 식의 분위기는 없는가? 사원들이 스스로 열심히 일하고 신나게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 나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나는 지금 신나게 일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회사 전체의 세 즉 분위기의 문제인가? 아니면 나 자신이 지금 내게 맞지 않은 자리에 있는 것인가? 적재적소가 아닌 적소적재 차원에서 뒤집어 점검해 보자. 그리고 정말 신나지 않는다면 상사에게 내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은 어떨까?
신나게 일하는 것만큼 신나는 일은 없다
能 擇 人 而 任 勢
능할 능 가릴 택 사람 인 말이을 이 맡길 임 기세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