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로 남겨둔 취미 – 흑백 사진

아날로그로 남겨둔 취미 – 흑백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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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에 입학하고 컴퓨터를 처음 배우던 무렵이 윈도우95가 처음 발표되던 해이다. 당시 펜티엄 컴퓨터를 활용해서 하던 일은 주로 도스용 아래아 한글 2.5 워드프로세서로 강의 리포트를 작성하거나 모뎀을 이용한 PC 통신, 혹은 지뢰 찾기라는 윈도우 게임을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인터넷이라는 것이 국내에 소개는 되었지만 보편적으로 사용되지는 않던 시절이었다. 이 시절 대부분의 수업은 리포트를 손으로 써서 제출했는데 일부 강의는 워드프로세서로 출력된 리포트를 요구하였다. 당시 리포트에 사진을 첨부하기 위해 컴퓨터에 내가 찍은 사진을 올릴 방법을 수소문해보았는데 결과가 실망스러웠다. 사진을 슬라이드 필름으로 촬영한 다음 현상된 필름 원본을 전문업체에 의뢰해서 드럼스캐너를 통해 스캔한 후 CD 등의 매체로 전달받는 것이었는데 비용이 상당히 고가였다. 학생 용돈으로 감당하기 힘들어서 포기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에 조악한 품질의 디지털카메라가 용산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학과 사무실에 있던 디지털카메라를 상당히 신기하게 만져봤던 기억이 있다. 다시 몇 년이 지나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할 무렵 SLR 타입의 카메라가 디지털 방식으로 본격적으로 출시되기 시작했다. 월드컵을 맞이하여 프레스용으로 개발된 카메라들이었다. 당연히 당시 내가 접근할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으므로 기술의 발전을 경탄하고만 있던 시기였다.

   
 

그로부터 딱 2년이 흘러 보급형 DSLR이란 물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디지털카메라에 대한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 흐름을 보고 약 한 달을 고민하고 나서 내 여가를 사진에 쏟아 붓기로 결심했다. 이때가 대략 10여 년 전으로 본격적으로 사진에 취미를 붙이게 된다. 세상에 펼쳐진 풍경을 디지털로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관련 자료를 찾아다녔다. 이 당시의 DSLR은 지금 판매되는 DSLR에 비해서 기술적으로 한계가 뚜렷했다. 당시 경쟁 상대인 필름에 비해서 명부 암부를 아우르는 관용도나 화이트밸런스를 비롯해서 색채감의 표현이 다소 만족스럽지 못하였다. 일명 뽀샵질로 통하는 디지털 후보정이 필수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아주 고가장비를 제외한 대부분의 DSLR이 35mm 필름에 비교해서 상이 맺히는 촬상면의 면적이 반밖에 되지 않음으로 인해 기존 필름카메라에서 활용하던 렌즈들의 장점을 온전히 수용하지 못하는 점 또한 상당한 불만사항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기술이 발전의 발전을 거듭하여 그동안 디지털카메라의 약점들이 하나둘씩 개선되어갔다. 요즘 보급되는 디지털카메라들은 예전 바디에 비해 그다지 크게 어렵지 않은 과정을 통해 훌륭한 사진들을 찍어내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내가 디지털카메라로 사진 찍기를 한 지 3년이 지날 무렵, 흑백필름이라는 나에게는 새로운 사진 작업 방법을 접하게 되었다. 병사가 남은 총알을 세어가며 사격을 하듯 한 컷 한 컷에 신중을 기해 찍어나가는 필름카메라 특유의 묘미를 알게 되었다. 얼마 후 디지털카메라를 중고로 처분하면서, 내 취미를 그냥 사진이 아닌 아날로그 흑백 사진이라고 스스로 정의를 내렸다. 이때부터 필름카메라들이 하나둘 늘기 시작하고, 냉장고에 필름과 현상 약품이 쌓이기 시작했다. 필름 현상도 흑백네거티브, 흑백슬라이드, 컬러네거티브, 컬러슬라이드, 크로스 현상을 막론하고 한동안 현상이란 종류는 대부분 해보고 나서야 현상과 인화 모두 흑백만 하는 것으로 정리하였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중고 확대기를 구입하고부터는 암실 인화도 시작하게 되었다. 사용하던 카메라와 필름의 크기가 자꾸만 커지는 중 35mm 필름으로 시작해서 120 필름과 중형판 카메라, 4×5 필름과 대형판 카메라까지 장만하고 보니 들고 다니던 장비와 현상, 인화하는 장비들로 집이 꽉 찰 정도가 되었다. 8×10 필름 카메라를 탐내던 무렵 큰 카메라에 대한 더 이상의 욕심 부리기를 그만두었다. 8×10 필름을 취급하기 위해서는 필름과 카메라뿐만 아니라 렌즈 등의 부수적인 촬영 기자재와 현상장비, 인화장비까지 새로 구성할 필요가 있었는데, 8×10 판형에 소요되는 장비들은 별거 아닌 간단한 것들도 터무니없는 고가에다 취급이 상당히 번거로웠다. 그래서 비용과 공간상의 문제, 그리고 향후 사진 활동 계획을 고려해서 8×10의 도입은 효율성이 많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의 장비 추가는 자제하고 앞으로의 사진 활동 계획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궁리하고 있다.

   
 
   
 

필름 사진의 선택은 내가 사진에 대해 품고 있던 생각에 대한 반전이었다. 윈도우와 웹이 IT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시기에는, 사진을 디지털화하기 위한 고민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사진은 디지털로 찍는 것이 당연한 시대에 들어와서는 디지털 사진을 포기하고 고전적인 필름으로 온전히 남아있기를 바라고 있다.

무엇이 날 아날로그 사진에 붙잡아 두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 질문해 보면 딱 집어내기 어렵다. 사진을 왜 찍는지도 솔직히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 요즘 필름 사진의 결과물이 디지털 사진과 비교해서 기술적인 면에서 우위에 설 것이 거의 없다. 오직 고단함과 수고로움 그리고 비용만 남아 있다. 다만 그 고단함과 수고로움 그 자체가 매력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내 감성이 아날로그를 지지하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나의 흑백 필름에 대한 그리움은 LP와 진공관 라디오, 완행열차, 흑백영화 같은 것들을 향한 마음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아날로그에 대한 그리움은 먼 과거에 대한 추억과 향수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과거로의 회귀 이상의 다른 의미를 찾아보자면 어떤 것이 있을까? 아마도 디지털 내지는 첨단의 대량생산 시스템에서 느끼는 공허함에서 오는 심리적 반작용이 아닐까 한다. 우리가 소비하는 공산품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구현되는지 중간 과정을 알 수 없다. 오직 요구하는 기능을 구현한 완제품을 소비만 할 뿐이다. 여기서 내 삶의 주변을 구성하는 구성품의 대부분이 불연속으로 채워졌다고 느낀다. 이는 나를 수동적이고 종속적이란 느낌이 들게끔 하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스스로 과정 전체를 주도하는 무언가를 내 생활의 일부로 채워 넣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비유하자면 대형마트에서 농산물을 사는 것을 그만두고 직접 땀 흘려 농사를 지어 밥상에 올리는 것과 같다. 내가 먹기 위해 직접 농사를 짓는 것이 그다지 효율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본업 외에 소일 삼아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비효율적인 것을 알면서도 그 과정을 즐길 것이다. 아날로그에 대한 내 마음이 이와 비슷할 것이다.

   
 
   
 

앞으로의 사진 활동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마도 내 일상의 주변을 소중히 간직하기 위한 활동일 것이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그 소중함이 점점 더 크게 느껴진다. 늙어가는 부모님의 사진 한 장, 내 평범한 일상의 사진 한 장, 언제 바뀔지 모르는 내 주변의 모습들을 한 장씩 흑백사진으로 담아 접착식 앨범에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각각의 사진들은 그저 평범하고 그저 그런 흑백사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한 권의 두꺼운 앨범이 되었을 때 그게 소중한 나의 삶이고 소중한 내 작품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평범한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오늘도 카메라에 흑백필름을 채우고 평범한 내 주변을 찍으러 나선다. 그리고 약품 냄새 가득한 암실에서, 어떻게 나왔을까 하는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인화지에 상이 맺히는 것을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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