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제 MBN 기술국 차장
원고 청탁이 매번 그렇지만 MBN 기술인협회장님의 갑작스러운 부탁을 받고 무슨 주제를 써야 할지 여러 날 고민하였다. 고심 끝에 20여 년 방송엔지니어 생활 가운데 비교적 최근 일로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이었던 ‘베트남 하노이 현장 생중계’ 후일담을 적어 보고자 한다.
part 1. 2주 안에 베트남 현장 생중계 준비라니
2019년 3월 즈음이니까 벌써 1년이 훌쩍 넘은 옛 추억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 ‘하노이 현장 생중계’는 식은땀 나는 긴박함의 연속이었기에 얼마 전의 일처럼 생생하다.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로, 그해 6월 분단 이후 최초로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이 이루어졌고, 연이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게 되었다. 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에도 북미 간 핵 협상이 난항을 거듭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큰 변화의 시작을 기대하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 회담이 성사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과정을 대한민국 국민이자 시청자 한 사람의 입장에서 편안하게 지켜보며, 회담에서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노이회담 개최 몇 주 전 긴급 경영진 회의를 통해 “MBN도 하노이 현장에 스튜디오를 설치해 뉴스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라는 소식이 중계팀에 전해졌다. 며칠 뒤 당시 중계팀원이었던 나와 보도기술팀 후배 한 명, 총 2명이 현장 스태프로 파견 가기로 급하게 결정이 났다. 이미 결정은 났고, 최소한의 인원과 장비로 최대의 효율을 뽑는 MBN 중계팀 정신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국내도 아닌 해외 야외스튜디오 생중계를 대략 2주 만에 준비하려니 소위 말하는 ‘멘붕’ 상태에 빠졌다. 다행히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 때의 보도국 취재단(취재기자/카메라 기자/PD) 인원이 대부분 하노이팀에도 들어와 있었다. 싱가포르 회담 때도 쉽지는 않았겠지만, 대체로 원활하게 진행됐었다는 후일담을 들은 터라 잠시나마 맘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잠시, 하노이 IMC(국제미디어센터 : International Media Center) 사전 취재등록과 생중계 해외망 신청, 야외스튜디오 장소 선정과 촬영 허가 등 어느 것 하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과정에 불안은 점점 커져갔다. 휴가차 베트남 여행을 갔던 것과는 또 다른 입장에서 접근해야 했다. 베트남에서 공식적인 촬영을 하려면, 공안에 신고 후 진행을 해야 하고 베트남 외교부에 촬영 신청과 허가 비용도 내야 했다. 베트남이 많이 자유화되었다고 생각했으나, 여전히 공산당 정부가 사회 전반에 걸쳐 통제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 일이었다. 여기에 더해 북미 양국 정부의 경호팀의 삼엄한 경호로 인해 방송 이틀 전까지 최종 야외스튜디오 위치 선정을 놓고, 베트남 공안과 주 하노이 한국 대사관과의 조율 문제로 MBN뿐만 아니라 모든 방송사가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
다음 이미지는 출발 전 베트남 외교부와 IMC 등에 주고받은 메일 리스트 일부이다. 출발 전 3~4일은 장비 최종 점검에 마음은 조급한데, 사내와 베트남 측 각종 요청 문서를 처리하느라 더 정신이 없었다. 베트남 외교부, IMC 담당자, 하노이 롯데 센터담당자들과 주고받은 메일만 수십 건이었다. 베트남이 아마도 세계가 주목하는 빅 이벤트 경험이 많지 않아서인지 시간적인 여유를 주지도 않고, 출발 전날까지 요구 사항들이 이어졌다.
part 2. 현장 답사는 원격으로
방송장비 준비, 야외스튜디오 장소 선정과 촬영 허가, 야외 세트 디자인 및 자재 준비, IMC 출입등록 및 장비등록 등 하노이 현장을 알고 처리해야 수월할 일들이 많아 현지 답사가 꼭 필요했었다. 그러나 2주라는 시간적 제약이 답사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았다. 취재차 선발대로 출발한 카메라 팀의 도움으로 구글맵을 보며 대략적인 배경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린 후 야외스튜디오를 답사 없이 과감하게 최종 후보 두 곳으로 결정하게 된다.
두 정상이 머물기로 한 호텔과 정상회담이 성사될 호텔이 ‘호안끼엠’ 호수 인근이라고 알려져서, 대부분의 한국 방송사들이 호안끼엠 주변을 중심으로 스튜디오 위치를 결정했다. 다른 방송사들은 이미 스튜디오 배경으로 삼을 뷰 좋은 장소 섭외를 경쟁적으로 마치고, 세트 공사를 진행 중이었다.
뒤늦게 결정한 MBN도 호안끼엠 주변을 일차적으로 고려했지만, 마음에 드는 위치를 찾기는 어려웠다. 호안끼엠과 하노이 롯데타워(호안끼엠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 야외 수영장 옆 장소 두 곳을 놓고 고민 끝에 과감하게 롯데타워 야외스튜디오로 최종 결정하고 진행을 했다.
그런데 회담 개최 이틀 전 갑자기 호안끼엠 주변의 스튜디오 촬영을 경호 문제로 모두 불허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날 오후 결국 KBS와 JTBC, CNN이 하노이 롯데타워, 우리 특설스튜디오 바로 옆으로 오게 되었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자 하노이 롯데 측 담당자들도 방송사들이 여기로 모이게 된 것이 MBN 덕분인 것 같다고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어 방송 진행에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 현장 답사도 원격으로 진행한 우연한 선택이 결국 신의 한 수가 될 줄이야.
part 3. 시간은 없어도 사전 준비는 확실하게
현지 오픈 스튜디오에는 앵커 포함 2명이 출연할 예정이었고, 중간에 현지 뉴스 리포트 기사 리드멘트와 현지 전문가 대담을 진행하기로 했다. 뉴스 중계차 1대를 섭외하면 장비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문제는, 베트남 현지 장비 업체를 통해 중계차나 이동용 중계 장비를 대여하려고 연락은 해봤으나 믿음이 가질 않았다. 고민 끝에 한국에서 가져갈 수 있는 최소한의 장비로 꾸려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주요 장비는 ENG 3대, DVCAM 1대, AV 스위처 소형 오디오 믹서, 앵커용 프롬프터, 그리고 송출은 MNG(인터넷 전용회선)로 정했다.
두 명의 인원으로 운용 가능한 수준으로 간단히 꾸려간다고 했지만, 출발 전날 장비를 챙겨보니 큰 캐리어로 10개나 되었다. 대부분이 이동용 포터블 장비들이라 생방송 안정성에 심히 우려됐지만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출국 전 준비 사항
1) IMC(국제미디어센터) 내에 HB(주관방송사/VTV) KT 회선 청약(주/예비/리턴)
2) IMC 공식 사이트 미디어 부스 신청/ 미디어 부스 내에 MBN 코덱 설치(KT)
3) VTV 옵션 그림 FEED 구매건 (하노이 현장에서 급하게 결정 및 입금)
4) MBN 야외스튜디오 송출 MNG용 전용회선 청약(하노이 롯데정보통신) / 50Mbps
5) 하노이 야외스튜디오용 방송장비 리스트 업(보유/렌탈/구매 등)
6) IMC 공식 사이트에 장비리스트 등록 및 취재원 등록
7) 숙박 및 항공편 예약
part 4. 긴장된 첫 방송, 그리고 예상을 빗나간 현장 사건들
야외스튜디오라 날씨의 도움이 꼭 필요했는데, 베트남이 우기로 들어갈 즈음이라 걱정이 되었다. 첫날 저녁 방송 때 약간의 비가 내리기 시작해 순간 아찔하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는 다행히 날씨가 우리 편이었다. 20년을 방송 현업을 했지만, 첫 라이브 연결은 여전히 긴장된다. 하노이 7층 야외스튜디오에 사전 계획했던 IP 비디오 ON-AIR 리턴과 오디오 N-1 리턴 신호도 다행히 딜레이 문제없이 원활하게 동작해 주었다.
긴장감 속에 첫 저녁 방송을 무사히 마친 후, 다음날 오전 뉴스 연결 끝나자마자 IMC로 HB 신호를 점검하러 가게 되었다. 이날은 김정은 위원장이 기차를 이용해 ‘동당’역에 도착하는 날이었다. VTV에서 별도로 제공하는 그림의 필요성이 없어 보여 보도국 내 의논 결과대로 사전 신청을 안 했었는데, 김정은 위원장의 동당역 근접 촬영 영상을 VTV가 독점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그림이 안 들어오니 본사에서는 난리가 났었고, 일단 IMC 담당자와 현장데스크가 전화상으로 오후에 바로 사용료 입금할 테니 영상을 넣어달라고 통 사정을 하고 이동을 했다. 취재기자들 얘기로 IMC 출입 ID 카드를 받으려면, 하노이 외교부로 가야 한다고 해서 차량 공유앱인 grab으로 택시를 잡고, 파파고 번역기를 보여주며 하노이 외교부에 가까스로 도착, 그런데 아뿔싸! 오늘부터는 IMC 현장에서 ID 카드 제공된다고…….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웬 럭셔리 승용차가 옆으로 오더니 IMC로 가는 길이니 같이 가자고 한다. 짧은 영어로 몇 마디 나누어 보니 하노이 외교부 소속 여성 간부였다. 덕분에 편안히 IMC에 도착할 수 있었다. VTV FEED 신청서 작성하는 곳에 역시나 타 방송사 사람들도 그제야 근접 촬영 영상을 신청하느라 분주한 상황이었다. 하루하루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었다.
현지 점검 사항
1) 하노이 롯데 센터 7층 야외 세트 단 점검, 전기 용량점검
2) 전용회선 50Mbps 인터넷망 점검(하노이 롯데정보통신)
3) 하노이 조명 업체 섭외로 HMI 1.2Kw 4대 설치 및 카메라 테스트
4) 현지 세트업체 장비 반입 및 설치 및 카메라 앵글로 세트 위치조정
5) 중계 방송장비 설치 및 주조 송수신 회선개통 후 현장 진행 리허설
6) IMC 내, MBN 미디어 부스 KT 코덱 설치 및 HB 신호 회선 점검
7) IMC 내, VTV 라이브 FEED(별도 요금) 신호 회선 점검
part 5. 아쉬웠던 회담 결과 그러나 MBN 현지 중계팀은 무사 귀환
드디어 북미 정상의 역사적인 두 번째 만남, 그리고 또 한 번의 북미 간 역사적인 정상 회담이 시작된다. 전날부터 벅찬 기대감과 앞으로 남북 간의 관계도 보다 더 발전되리라는 희망찬 기대의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회담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전문가들의 희망과는 정반대의 결과로 회담은 공동성명 발표도 없이 마무리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날 저녁 비행기로 출국해버리고, 기차를 타고 온 김정은 위원장만 하노이에 하루 더 남아서 다음날 일정을 소화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갑작스러운 해외 출장이라 개인적으로 매우 부담스럽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어려운 일정이었지만, 회담 결과가 좋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제일 컸던 것 같다. 역사적인 순간에 그 현장에 같이 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억임에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는 하노이 8박 9일 여정이었다.
혹시나 3차 북미 회담이 열릴 때 또 현장에 함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고군분투하던 하노이 회담의 경험은 개인적으로는 또 하나의 자산이 되었다. 뉴스 중계 감독으로 4년여 시간 동안 세월호 사건 팽목항 중계, 세월호 인양 후 목포 신항 이동장면, 추운 겨울 광화문 촛불시위, 평양 남북정상회담 도라산 야외스튜디오 뉴스8 중계, 포항지진 등 참 많은 일을 겪었다. 중계 현장을 다니며 취재기자들과 카메라 기자들의 수고와 노력도 알게 되었고, 함께했던 현장 취재진과 같은 전우애(?)를 느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에필로그
KBS 야외 특설스튜디오
메인뉴스를 현장에서 진행하느라 제일 많은 장비와 인원으로 북적였던 KBS팀, 인원과 장비와 전체적인 지원 규모가 부럽기도 했었다. KBS 중계팀 함◌◌ 감독도 우리 MBN 부스에서 서로 인사를 나눴었다. MBN 소규모 인원과 장비로 참 대단하다는 소감과 함께.
JTBC 야외 특설스튜디오
당시 손석희 앵커와 안나경 아나운서가 현지에서 진행했던 JTBC팀, 회담 전날 저녁 방송을 마치고 손석희 앵커가 바로 옆에서 같이 방송하던 주변 방송사 스태프들을 찾아와 수고가 많다고 인사하고 가셨던 기억이 떠오른다. 같이 사진이라도 찍어 남길 걸,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