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러브리티’로 살펴보는, 미디어 헤게모니 이동론

‘셀러브리티’로 살펴보는, 미디어 헤게모니 이동론

만일, 매우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산업의 정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인터넷으로 미디어 산업이 많이 바뀌었다.”라고 표현한다면 이는 이제 구시대적인 표현에 불과하다. ‘인터넷’은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 초반까지 미디어 산업의 급변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했던 키워드이지, 현재 시점에서 ‘인터넷’ 때문에 미디어 산업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럼, 오늘날 미디어 산업을 설명할 때 주로 활용할 수 있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OTT(Over The Top)’, 그리고 그 대표적인 서비스인 ‘넷플릭스(Netflix)’가 있겠다. ‘동영상’, 그리고 그 대표적인 서비스로 ‘유튜브(YouTube)’도 중요한 키워드다. 또 하나를 꼽자면, ‘SNS(Social Network Service)’, 그리고 그 대표적인 서비스로 ‘인스타그램(Instagram)’이 있다.

필자는 평소 SNS가 미디어 산업에 끼친 영향이 상당하다는 말을 많이 자주 들어왔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완벽히 수긍하기 어려웠다. SNS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플랫폼으로서 미디어 콘텐츠의 유통력에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장점은 명확히 보였지만, 미디어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것이 장기적으로 미디어 산업 전반을 어디로 어떻게 이동시킬지에 대해 머리에 그려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콘텐츠 셀러브리티(Celebrity)를 보고선, 미디어 산업의 정황이 어떠한 원리로 변화하고 있고 이 변화의 원인을 설명하는데 ‘SNS’, ‘인스타그램’과 같은 키워드가 왜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여주인공 ‘서아리’가 인스타그램 셀러브리티가 되는 과정을 담은 콘텐츠를 통해 미디어 산업의 거대한 정황적 변화를 더욱 체감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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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지 않아도 승자가 될 수 있는 그 공간으로
미디어 산업이 급변했다는 정황적 증거 중 하나로, 사람들은 지상파 방송의 쇠락을 얘기한다. 그럼 지상파 방송은 왜 쇠락했나? 기술과 서비스의 변화, 그에 따른 시장질서 재편, 이용자 생활패턴의 변화 같은. 그런 복잡한 설명보다 명쾌한 이유가 있다. 바로, ‘수수함’이라는 것이 콘텐츠로서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상파는 대체로 화려했다.

화려한 캐릭터, 화려한 의상, 화려한 조명. 그리고 이로써 얻게 되는 화려한 인기와 명성… 이러한 요소들이 대체로 지상파 방송 콘텐츠의 분위기이자 성과로 표출되는 것들이었다. 화려함이다. 지상파 방송에서는 연기자 한 명이 제아무리 대단한 개성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지상파 문법에 맞춰 화려한 스타의 이미지를 갖춰야 스타의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지상파 방송에서의 스타는 외모만 화려할 뿐만 아니라, 성격이나 사생활도 스타의 공식을 습득한 사람만이 스타로서 자격을 갖추게 된 것이다.

전반적으로 SNS에서는, 특히 인스타그램에서는. 이러한 공식이 깨졌다. 방송에서 꾸며진 이미지로 활동하는 연예인에게만 스타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인플루언서에게도 기회는 무궁무진하게 열려 있다. 셀러브리티의 주인공 서아리의 모습은 스타의 일상이나 스타의 꾸며진 이미지와 거리가 있었지만, SNS의 팔로워들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하며 그녀를 스타로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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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에서 서아리의 모습을 볼 때, 스타의 모습처럼 꾸며진 것이었다면 대중이 저만큼 열광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동대문에서 산 옷이나 액세서리로 단장하거나 홍대 구제샵에서 구매한 에코백으로 멋을 부린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서아리의 특별함에 열광하며 그녀에게 스타의 지위를 부여한다. 지상파에서는 일반인의 지위에 가두게 했을 ‘수수함’이라는 요소가 오늘날의 SNS에서는 스타로서의 요소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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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성, 그것이 헤게모니를 얻는 열쇠
다시, 지상파 방송의 쇠락은 근본적으로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이 해답을 찾으면 지금의 미디어 환경을 이해할 수 있는데, 필자는 지상파 방송 쇠락의 근본적 원인을 ‘시청자 간의 단절’에서 찾는다.

SNS라는 미디어 플랫폼을 이용하는 이용자는 서로 간에 연결되어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공유된 콘텐츠는 플랫폼의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의 평가를 받게 된다. 연결된 이용자 간에 서로 콘텐츠를 공유하는데 그치지 않고 마음대로 평가하고 공유하며 수정하고 확대 재생산한다. 이러한 이용자 간의 연결성은 콘텐츠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새롭게 생산될 콘텐츠를 예상케 한다. 하나의 콘텐츠가 등장하면, 발 빠르게 ‘연결된 이용자’들이 평가를 하고 현시점에 어떠한 콘텐츠가 필요한지 의견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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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은 이러한 SNS적 연결성에 더해, ‘등급화된 이용자 연결성’을 더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수많은 팔로워를 지닌 유명인(셀러브리티) 수준의 이용자에서부터 이제 막 이용을 시작한 신규 이용자까지 이용자들이 등급화되어 있는데, 이들 등급화된 이용자 간 연결성으로 인해 콘텐츠는 더욱 세분화한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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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러브리티의 서아리는 극 중에서 팔로워 숫자를 늘린 비결로, 유명인과 연결성을 언급했다. 바로 서아리가 유명인과 팔로잉/팔로워 관계를 맺게 되면서 서아리가 게시한 인스타그램 콘텐츠는 재평가의 기회를 맞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더 많은 사람이 서아리에 열광하며 팬을 자처하게 되는 현상을 낳게 된다. 연결성, 특히 유명인과의 연결성은 서아리의 미디어 콘텐츠에 더 세련되고 값진 가치를 부여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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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함의 정도를 통해 승부가 결정되는 전쟁터

방송법과 방송심의 기준을 준용해야 하는 기존의 전통적인 미디어 제작 방식은 시청자를 차츰 외면하게 만들었다. 가뜩이나 볼 것이 풍성한 시대에는 ‘독창성’이라는 것이 ‘특별함’이나 ‘특이함’의 성질을 넘어서 ‘실험성’이라는 요소를 갖춰야 하는데, 전통적인 영상 미디어 중에서도 특히 방송 영역에서는 실험적 콘텐츠를 시도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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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러브리티에서 서아리는 극 중에서 사망한 것으로 대중에게 인식되다가, 갑자기 라이브 방송(라방)을 통해 활동을 재개하는데 이러한 설정은 기존의 전통적인 미디어에서는 실험적인 것에 더해 무모한 시도로 보인다. 대중에게 죽은 것으로 알려진 연예인이 갑자기 자기 마음대로 라이브 방송을 켜고 방송을 한다? 이러한 콘텐츠가 방송용으로 전파를 타게 하려면, 아마도 제도적으로 수십 단계의 해결 과정을 거치고 보수적인 조직의 의사결정 절차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SNS에서는 그렇지 않다. 실험적이고 무모한 시도가 언제나 찬사를 받고 새롭고 혁신적인 콘텐츠가 인기를 끈다. SNS에서 어설프게 평범한 수준의 콘텐츠보다 확실하게 밋밋한 맛을 내는 콘텐츠가 더 주목을 받는 이유는 모든 콘텐츠의 목표가 실험적이고 무모한 도전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SNS에서 생산되는 모든 콘텐츠의 특별함과 특이함은 바로 이렇게 내재화되고, 이는 제도에 묶여있는 전통적인 미디어가 감히 따라 하지 못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미디어의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이를 체감하는 이용자의 관점에서 그렇다. 마치 전통적인 미디어에 헤게모니라는 것이 존재했었나 느껴질 정도로 전통적인 미디어의 힘은 더욱 약해지고 있다. 그렇게 미디어 헤게모니가 이동하는 동안, 우리는 어려운 미디어 산업분석과 그에 따른 수학적 해석을 통해서만 그 이유를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헤게모니가 이동하는 쪽을 바라보면서 그쪽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과연 어떠한 힘과 요소들이 헤게모니를 이동하도록 했는지. 보다 파편화되고 미시적인 차원의 분석들에 인색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셀러브리티 시청 후 미디어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느낀점은 바로 이런 것이다.

* 본 원고 내 사진은 넷플릭스 코리아 공식 유튜브 채널(www.youtube.com/@NetflixKorea)을 출처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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