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주호의 테마클래식 11 – 크리스마스

송주호의 테마클래식 11 –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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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호 EBS IT운영부 선임

어느덧 연말이 되었습니다. 지난 한 해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보며 상념에 젖기도 하지만, 막연히 연말 분위기에 들떠 마냥 즐겁게 지내는 것이 상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기에는 인류의 죄악을 대속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크리스마스가 있기도 하니 말이죠. 어쩌면 괜히 설레는 마음은 이 크리스마스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렸을 때는 기념행사를 준비하면서 노래도 부르고 악기도 연주하고 연기도 했었는데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성탄 전야가 가까워져 오면 왠지 모를 기대감에 부풀곤 합니다.
이렇게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데 클래식 음악도 빠질 수 없습니다! 지난 2000년 동안 예수님의 탄생은 중요한 음악 소재가 되어왔습니다. 최근 100년 동안에는 종교음악이 종말을 맞았다고 합니다만, 오히려 다양성의 미덕이 그 어느 때보다 가치를 얻으면서 보다 다양한 장르에서 크리스마스 음악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칸타타와 오라토리오
20세기에도 크리스마스 음악은 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성악곡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 곡으로 추천하는 작품은 ‘프랑스 6인조’의 일원인 아르튀르 오네게르(Arthur Honegger : 1892~1955)의 <크리스마스 칸타타>(1953)입니다. ‘프랑스 6인조’는 1920년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여섯 작곡가의 음악회에 참석했던 평론가 앙리 콜레가 붙인 이름으로, 그들은 이 이름 덕에 큰 주목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원이었던 루이 뒤레가 이듬해에 그들과 함께하기를 거부하고, 조르주 오릭이 영화음악으로 진로를 변경하면서 실질적으로 여섯 작곡가가 함께 활동했던 기간은 2년이 채 안 되었죠. 프랑스 6인조는 바그너와 드뷔시 풍의 인상주의를 반대하고 감각적이고 현실적인 음악을 추구했다고는 하지만, 처음부터 공통적인 음악적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었기에 그 특징을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오네게르의 크리스마스 칸타타 연주 장면
오네게르의 크리스마스 칸타타 연주 장면

그중 오네게르는 독일적인 형식미를 갖추고 있었는데, <크리스마스 칸타타>에서도 베토벤을 연상시키는 규범적인 면모가 많이 보입니다. 그럼에도 이전에 작곡된 오라토리오 <다윗 왕>과 <주디트>에서 보여준 오페라에 필적하는 극적 표현력은 그의 마지막 작품인 <크리스마스 칸타타>에서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부분을 살펴보면, 오르간으로 저음이 깔리면서 라틴어로 ‘심연으로부터’를 부른 후 곧 밝아지면서 ‘오, 임마누엘이여 오소서’를 프랑스어로 부르고 곧 하늘에서 천사가 나타나 ‘이스라엘아, 기뻐하라’를 독일어로 부릅니다. 이렇게 세 가지 언어를 한 곡에 사용하는 것은 흔치 않은데요, 혹시 스위스 출신이라서일까요? 어쨌든 이러한 그의 작법은 언어가 내용 전달이라는 일차적인 목적을 넘어 발음 자체가 갖는 음악적 요소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선구적이며, 극적인 스토리텔링과 결합되어 그 효과를 배가시킵니다. (추천영상 : youtu.be/Vm2T5SSlCGI)

보다 가벼운 작품으로는 죄르지 오르반(György Orbán : *1947)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1998)가 있습니다. 트란실바니아 출신의 헝가리 작곡가인 오르반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남다른 감각을 지니고 있는데요, 그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도 성탄의 신비를 충분히 표현하면서도, 여느 교회에서 연주되더라도 어색하지 않을 음악입니다. 그는 루마니아의 클루지-나포카 음악원에서 음악을 공부한 후 1979년에 헝가리로 이주했으며, 1982년에 부다페스트의 리스트 음악원의 작곡 교수가 되었습니다. 합창 음악에 집중하고 있는 그는, 전통적인 기도 음악과 바로크의 대위법, 그리고 재즈 어법이 가미된 독특한 음악을 작곡하고 있죠.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는 세례요한의 아버지 스가랴의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수태고지, 세례요한의 설교, 동방박사, 천사와 목동, 헤롯의 사건 등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으며, 낭독을 통해 대중적인 이해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비록 대본과 가사가 헝가리어로 되어있지만, 음악이 전하는 메시지는 어려움 없이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오페라

엘 니뇨 중 헤롯과 동방박사 장면
엘 니뇨 중 헤롯과 동방박사 장면

미국의 미니멀리즘 작곡가인 존 애덤스(John Adams : *1947)의 오페라 <엘 니뇨>(2000)도 수태고지부터 헤롯의 학살을 피해 달아나는 장면까지 예수의 탄생의 극적인 순간들을 담고 있습니다. 영미권을 중심으로 아방가르드의 복잡성을 반대하면서 나타난 미니멀리즘 음악은, 짧은 단편이 오스티나토와 같이 반복되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진행으로 단색적인 분위기를 오래 지속시키는 효과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니멀리즘 음악이나 그 기법은 긴장감을 유지하는 영화 음악에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엘 니뇨>에서도 미니멀리즘 음악 특유의 극적 긴장감이 예수 탄생의 긴박했던 순간들을 현장감 있게 전달합니다. 특히 이 곡은 영어로 부르는 마리아와 스페인어로 부르는 마리아, 그리고 무용수 마리아까지 3인 1역을 담당케 하여 극이 마리아에 집중되어있습니다. 피터 셀라스 연출의 공연에서는 극의 상황을 현대로 각색한 영상이 함께 상영되었는데요, 이것도 포함하면 4인 1역이었네요. 추천영상은 예수의 탄생과 헤롯 부분입니다.
(추천영상 : youtu.be/-hCUQRWUIOc)

아말과 야밤의 방문객 중 마지막 장면
아말과 야밤의 방문객 중 마지막 장면

뮤지컬 스타일의 대중적인 오페라로 유명한 지안 카를로 메노티(Gian Carlo Menotti, 1911~2007)의 <아말과 야밤의 방문객>(1951)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 중 하나일 것입니다. 메노티는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로부터 한국을 소재로 하는 오페라를 위촉받아 <시집가는 날>을 작곡하여 서울에서 초연한 인연도 갖고 있죠. 이 작품은 동방박사가 여행 중에 가난한 아말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고, 이 과정에서 다리가 불편해서 지팡이를 짚고 다니던 아말이 기적적인 치유를 경험하면서 동방박사와 함께 길을 나선다는 내용입니다. 뉴욕에서 성탄 전야에 초연되면서 생방송으로 중계된 기획 작품으로, 유머와 극적 긴장이 적절히 가미된 명작입니다. 추천영상은 BBC에서 2002년에 제작한 오페라 영화입니다. 먼저 약 6분간 제작에 대한 소개를 한 후 본 작품이 이어집니다.
(추천영상 : youtu.be/gTUugCoR0GY)

성탄 전야 중 1막 마지막 장면
성탄 전야 중 1막 마지막 장면

그런데 크리스마스가 예수의 탄생과 관계없이 단지 시간적 의미만을 나타내는 작품도 있습니다.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Nicolai Rimsky-Korsakov : 1844~1908)의 오페라 <성탄 전야>(1895)가 바로 그런 작품이죠. 그는 러시아 밖에서는 색채감 있는 관현악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러시아 안에서는 열여섯 개의 오페라로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성탄 전야>의 대본은 러시아의 대문호 고골의 소설 ‘디칸카 근교 농장의 밤’을 기초로 하여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직접 썼습니다. 이 소설은 이전에도 세 차례 정도 오페라의 소재로 사용되었는데, 그중에는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대장장이 바쿨라>(1876)도 포함되어있습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이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고골의 이야기에 슬라브 신화의 요소를 가미했는데요, 나중에 이를 실수라고 말하며 후회했다고 합니다. 초연을 준비하면서 메조소프라노가 맡는 풍자적인 여왕의 무대 의상이 카트린느 2세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공연이 취소될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마지막에 이 배역이 바리톤으로 바뀌면서 12월에 상트 페테르스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에서 무사히 초연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존심이 상한 작곡가는 이 공연에 참석하지 않았죠. 성탄 전야에 연인인 옥사나로부터 사랑을 얻지 못한 바쿨라는 연인이 요구한 차리차의 신발을 악마의 도움으로 손에 넣어 크리스마스 날에 전해주고,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결혼 승낙을 얻는다는 내용입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음악은 환상적인 이야기에 걸맞게 색채감이 뚜렷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갖고 있습니다. 유명한 <셰헤라자데>나 <스페인 광시곡>과는 다른 모습이죠. 오페라 <황금닭>도 환상적인 설화를 소재로 하여 신비로운 음악을 들려준 것을 생각해보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페라는 재발견되어야 할 대상임이 분명합니다. 부리아트 국립 오페라단의 1막을 추천영상으로 골라보았습니다. 동화와 같이 환상적인 무대도 즐기시고, 2막도 있으니 이어서 보시기 바랍니다.
(추천영상 : youtu.be/osvZEsJp8Cg)

크리스마스 교향곡
뭐니 뭐니 해도 역시 크리스마스에는 캐럴이 제격이죠. 누구나 몇 개쯤은 기억하고 있는 캐럴은 이미 세계 만국의 언어가 되었으며, 크리스마스 음악에 단골 소재가 되고 있습니다. 물론 20세기 작곡가들에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빅터 헬리-허친슨(Victor Hely-Hutchinson : 1901~1947)의 <캐럴 교향곡>(1929)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영국 식민지 시절 케이프 타운에서 마지막 통치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922년에 케이프 타운에서 음악을 가르쳤으며, 4년 후 영국으로 돌아와 BBC에 입사하여 음악감독을 담당했죠. 1934년에 버밍엄 음대 교수가 되었으며, 10년 후에 BBC로 돌아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음악감독으로 활동했습니다. <캐럴 교향곡>은 헬리-허친슨의 대표작으로, 1929년 9월 26일에 퀸스홀 프롬나드 콘서트에서 초연되었으며, BBC에서 생방송으로 중계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연말 시즌에 초연되지 않은 것이 특이하네요. 제목처럼 크리스마스 캐럴을 주제로 사용하며, 네 악장이 중단 없이 연주됩니다. 1악장은 ‘참 반가운 성도여’(찬송가 122장)를 바흐의 코랄 전주곡 풍으로 편곡한 것이고, 2악장 스케르초는 ‘만백성 기뻐하여라’(찬송가 117장)입니다. 느린 3악장은 ‘코벤트리 캐럴’과 ‘저 들 밖에 한밤중에’(찬송가 123장)를, 마지막 4악장은 1악장을 다시 회상하면서 ‘여기 캐럴을 부르러 왔어요’가 등장합니다.
(추천영상 : youtu.be/hCC-zjoiegE)

앨런 호바네스(Alan Hovhaness : 1911~2000)의 <크리스마스 교향곡>(1981)도 기억해야 할 작품입니다. 그는 아르메니아 계의 미국 작곡가로, 작품번호가 434에 이르는 다작가였습니다. 그는 실험적이고 학구적인 사조와는 전혀 관계하지 않았으며, 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투명하고 명료하게 작곡했습니다. 자신의 뿌리인 아르메니아와 부인의 나라인 일본의 음악에 대한 관심이 작품에 많이 반영되어있기도 합니다. 1960년에는 국악기를 사용하는 등 한국 음악에 관심을 보인 적도 있습니다. <교향곡 49번 ‘크리스마스 교향곡’, Op. 356>은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으로, 그의 다른 교향곡들과는 달리, 위촉 없이 성탄을 주제로 교향곡을 쓰고 싶다는 순수한 의도로 작곡되었습니다. 그는 이 곡에서 어린 시절에 가졌던 성탄에 대한 이미지를 표현했습니다. 초연은 5년 후인 1986년 12월 6일에 작곡가가 지휘하는 버밀리언 챔버 오케스트라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1악장 ‘하늘의 계시’는 호흡이 긴 멜로디가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립니다. 이 선율은 푸가로 발전하고, 예언의 신비를 표현한 피치카토로 끝납니다. 2악장 ‘천사’는 호바네스가 어린 시절 불렀던 크리스마스 멜로디에 대한 인상이 표현되어있고, 3악장 ‘목가’는 평화롭고 고요합니다. 제1바이올린이 높은음으로 올라가면서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코러스에 합류합니다. 마지막 4악장 ‘별-야경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밤의 이야기’는 마치 물결과 같이 성탄의 노래가 들려옵니다. 1악장처럼 푸가로 발전한 후 다시 성탄의 노래로 되돌아와 성탄의 축복을 남긴 채 공간으로 사라집니다. 이 <크리스마스 교향곡>은 다른 교향곡에 비해 보다 단순하게 작곡되었는데, 순진무구한 어린 시절의 이미지를 담으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추천영상 : youtu.be/WOSVr1d0ht8)

크리스마스 교향곡을 지휘하는 펜데레츠키
크리스마스 교향곡을 지휘하는 펜데레츠키

<교향곡 5번 ‘한국’>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Krzysztof Penderecki : *1933)도 <교향곡 2번 ‘크리스마스’>(1980)를 작곡했습니다. 펜데레츠키는 1960년대 유럽의 아방가르드 음악을 리드하는 존재였으나, 1970년대에 들어서 신낭만으로 급격히 전향해 ‘배신자’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신낭만 어법이 자리를 잡았을 때 작곡된 <교향곡 2번>의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은 사실 이 곡을 쓰기 위해 펜을 든 첫날이 1979년 12월 24일이었다는 데서 나왔을 뿐입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캐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에서 첫 구절 ‘고요한 밤’에 해당하는 단 두 마디(!)를 군데군데 배치했죠. 이것은 <교향곡 5번>에서 사용된 ‘새야 새야’보다도 짧습니다. 이렇게 짧게 인용한 이유는, ‘새야 새야’는 한국을 벗어나면 아무도 모르지만 ‘고요한 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선율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크리스마스’를 제목으로 하는 만큼 좀 밝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살짝 남습니다. 작곡자가 직접 지휘하는 영상을 추천영상으로 골라보았습니다.
(추천영상 : youtu.be/KgzLriv2vbg?list=PLAC28BB38CBE3A2C9)

21세기를 살아가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라면, 올해 연말은 이러한 우리 시대의 언어로 노래한 크리스마스 음악을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부활하시어 역시 현대를 살아가는 예수님도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음악으로 당신의 축일을 즐기실 테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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