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방송, 신항로 개척과 합종연횡

유료방송, 신항로 개척과 합종연횡

IPTV, 위성방송, Cable 등 유료방송을 포함하여 옥수수와 pooq과 같은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을 둘러싼 미디어산업의 M&A가 올해 초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IPTV는 3년 전부터 Cable과의 합병을 시도했던 만큼 상반기 내 어느 한 곳이라도 먼저 성사된다면 봇물 터지듯 전체로 퍼져나갈 태세이다. 이미 인수합병을 위한 실사는 대부분 끝난 상태이며 최종 승인 결정만 남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위성방송과 일부 Cable은 신사업의 청사진을 밝히며 각자도생을 외치고 있으나 언제든지 M&A 돌풍에 휩쓸릴 수 있는 풍전등화 처지이다. 미국발 동영상 스트리밍 돌풍이 유럽을 강타한 결과 보수적으로 유명한 영국과 독일도 토종 업계 간 몸집 부풀리기에 나섰을 정도로 미디어 시장의 M&A는 이미 대세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얼마 전 국내 미디어 콘텐츠 시장을 점령하려는 유튜브와 넷플릭스에 대항하기 위한 국내 OTT 진영의 활로 모색 결과, 지상파와 통신사의 합병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언뜻 보면 처음 겪은 일처럼 보이지만 인류사를 돌이켜보면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있었다. 미디어 시장을 둘러싼 일련의 경과들을 역사 속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역사 속으로 _ 신항로 개척 시대
주지 하다시피 내년에는 미디어 시장에 들이칠 인수합병의 풍랑으로 인한 대란이 불가피할 것이다. 뜬금없지만 지금의 위성방송은 중세 유럽이 위험을 무릅쓰고 갈구했던 신항로 개척과 그 맥을 같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추가 절실했던 유럽이 육로를 통해 동인도 제도로부터 수급하려 해도 중간에 이슬람 국가가 가로막고 있어 세금이나 수수료를 감당하기가 어려워지자 바닷길을 찾아 나선 것이 곧 신항로 개척이다. 위성방송 또한 명실상부 가입자 기반의 유료방송 회사이기에 가입자(동인도 회사)를 확장하여 수익(후추)을 늘리고 싶어도 IP라는 신무기로 무장된 막강한 경쟁자(이슬람 국가)가 버티고 있기에 신사업(DCS, SLT, MVNO, OTT, New Commerce), 신결합상품(DPS), 신제품(AI) 등 실적 턴어라운드를 위해 새 수익원(신항로 개척)을 찾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IPTV와의 경쟁에서 밀린 Cable 사도 기업 가치가 떨어져 상장이 무산되자 컨소시엄에 팔았던 지분을 되사는 콜옵션을 행사하며 독자 생존 전략을 꾀하고 있다. 스마트렌탈은 전년 대비 400%나 성장했으며 플랫폼매출 이외의 영역에서 수익을 올리기 위해 AI, O2O 등 신규 사업을 위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상 중이다.

대항해시대
대항해시대

단지 차이가 있다면 그 당시는 한정된 자원을 누가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경쟁했던 소유경제가 주를 이룬 반면 지금은 공유경제와 구독경제의 시대라는 점이다. 자본주의 시장 체제에서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로 일컬어지는 상품경제가 오랫동안 이어져 온 결과, 부의 편중이 심화하다 보니 한정된 재화로 최대의 만족을 이루려 하는 효용경제가 공유와 구독의 형태로 대중으로부터 보편적인 설득력을 얻고 있다. 쉽게 말해 전부를 사야 하는 상품경제에서 사용한 만큼만 지불하는 공유경제를 지나 보다 더 쉽고 편리하게 원하는 재화를 다양하게 소비하고자 하는 소비자 중심의 욕구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충족시켜주는 구독 경제가 요즘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초기 단순한 정기구독(신문) 및 배송형태(생필품)에서 한계효용은 체감하기에 다양한 고가 렌털(자동차, 명품백)로 이어졌고 이제는 무한 제공(스트리밍, 레저)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미 아마존, 넷플릭스, 현대차 등 기존 기업들의 새로운 마케팅으로 각광받고 있고 많은 신생 스타트업의 O2O 비즈니스 모델로도 성장하고 있다. 가입자가 곧 구독자인 유료방송시장에도 초기 심플한 TV를 시작으로 가전, 의료, 레저 등으로 그 영역을 점차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역사 속으로 _ 합종연횡 시대
IPTV와 Cable은 기원전 4세기 말경 중국의 합종연횡을 보는 것처럼 유사하게 전개되고 있다. 합종연횡은 중국 전국시대의 최강국인 진과 연·제·초·한·위·조의 6국 사이의 외교 전술을 말한다. 먼저 소진은 연나라를 설득하고 나머지 5국을 돌며 공수동맹의 합종을 제안하며 강대국인 진에 맞서는 전략을 펼쳤다. 뒤이어 장의는 합종은 언제 깨질지 모르며 실리를 위해 강한 진과 횡적 동맹을 맺는 연횡을 상대적으로 강한 제와 초를 시작으로 나머지 4국과도 개별적으로 체결하여 합종을 무력화시키고 통합하여 끝내 중국을 통일하게 된다. 초기 Cable은 CJ, 티브로드, 딜라이브, CMB, HCN, 개별SO 등 6사로 구성된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를 전면에 내세워 IPTV(진)를 견제하기 위해 합산규제에 대해 강력하게 찬성(합종)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미묘한 온도차를 보이더니 결국에는 미디어산업의 선택과 집중을 하려 하는 1위 케이블사(제)와 사모펀드에 자금을 대줬다 출자전환된 은행 대주단의 3위 케이블사(초)는 매각을 위해 현재 IPTV와 선제적으로 M&A 체결실사(연횡)에 이르게 되었다.

합종연횡
합종연횡

작년 11월부터 케이블의 총 가입자를 추월하였고 올해로 탄생 10년째를 맞는 IPTV는 연평균성장률 CAGR이 무려 38%에 달할 정도로 꾸준히 가파르게 급성장 중이다. 벌써 격차가 110만에 이를 정도라니 케이블 업계 1, 3위가 매물로 나온 상황에서 나머지 중소 SO도 시간의 문제지 결국에는 IPTV로 유료방송시장은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결합상품 덕이지만 한편으로는 IPTV를 소유한 네트워크 사업자들의 프리미엄이 케이블사업자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선의 경우 작년 말 5G를 상징적으로 상용화하였고 유선의 경우 현재 100GbE를 넘어 내년에는 400GbE 채택이 본격화될 것이다. 그에 반해 케이블은 광과 동축의 혼합인 HFC망과 대역을 합쳐 속도를 늘려주는 채널 본딩 방식으로 4K에 이어 설령 8K를 따라간다 하더라도 VR, 홀로그램과 같은 실시간 대용량 초저지연 전송에는 그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이상의 CAPEX 및 OPEX 투자는 ROI 관점에서 BEP는 요원하기에 더 값어치가 떨어지기에 앞서 지금 매각하는 것이 경제적 측면에서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천신만고 끝에 천하를 통일한 진이 병마용갱, 아방궁, 만리장성 등에 국력을 허비하며 15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듯이 IPTV 또한 당분간은 유료방송시장을 호령하겠지만 매체 발전에 따른 시청 행태 또한 급변하고 있어 6G가 도래하는 2020년 중후반의 판도는 오리무중일 공산이 커 보인다. 진에 이은 중국의 통일왕조 한나라의 패망 또한 살기 어려워진 농민들의 민심을 파악하지 못해 발생한 ‘황건적의 난’에 기인한다. 머리에 두른 노란색 두건인 황건의 물결이 시대가 흘러 조끼로 바뀌었을 뿐 민의를 잃은 마크롱의 정치적 생명 또한 다해 가는 듯, 지지율 급락과 함께 재선 가도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이 모두 시대의 흐름을 잘 읽지 못해 비롯되었다. 참 쉽고도 어려운 말이지만 시대의 흐름만 잘 읽는다면 변방에서 DVD를 팔던 회사가 기존 방송시장의 아성을 허물고 중원을 장악할 수도 있다. 위성방송이라고 해서 언제나 산간벽지나 도서 지역의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 공적 책무로서의 그 위상을 국한 짓거나 단정 지을 수는 단연 없을 것처럼 말이다.

국내 미디어 시장의 도전
새해 벽두부터 지상파 3사가 합작으로 출범한 OTT 서비스인 푹과 통신사가 100% 지분을 가지고 있는 자회사의 모바일 동영상 플랫폼인 옥수수가 합병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가장 확실한 국내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는 지상파가 야심 차게 도전한 OTT 서비스가 이렇다 할 성과를 못 내고 있고, 국내 최대 모바일 가입자를 기반으로 하는 통신사의 지원에도 성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두 회사의 합병은 콘텐츠와 플랫폼의 결합으로 약점을 보완하려는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나 속내는 국내 시장을 잠식하려는 외세에 대항하기 위함이다. 개방형 K콘텐츠 플랫폼을 지향하기에 투자유치를 국내에 국한하지 않고 싱가포르텔레콤과 싱가포르투자청 등과 협력할 정도로 규모를 키우려 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언제부턴가 서서히 콘텐츠 팬덤층을 늘려가고 있는 최대 MPP 사와 인기 종편이 빠졌다는 것이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이 둘 또한 논의 테이블에 올려졌으나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바라보는 속내가 사뭇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방송3사-SKT 동영상 플랫폼 공동사업 양해각서 체결식 / 출처 : SK텔레콤

바로 이 점이 이미 백여 년 전에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집필한 미완성의 동양평화론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야욕을 채우려 세력을 확장하려는 외세로부터 아시아가 연합하여 우선 동북아 평화체제를 구축하자는 구상이었으나 우월적 지위에 있는 쪽에서는 평화 자체를 다르게 해석하는 데서 문제가 비롯되었다. 비록 그 꿈을 다 펼쳐 보이진 못했지만 당시의 서세동점은 한 세기가 흘러 국가에서 경제로 그대로 옮겨 왔다는 생각이 든다. 호시탐탐 국내시장을 노리고 있는 스트리밍 회사가 국내 IPTV와 마침내 동맹을 맺고 세력을 확장하려 한다. 툭하면 법리공방을 벌이고 있는 세계 1, 3위의 모바일 제조사도 2위를 견제하기 위해 손을 잡는 마당에 특정 회사 탓을 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으나 전국시대 진나라가 괵나라를 멸하기 위해 거짓으로 길을 빌려 우나라와 협력한 가도멸괵이 떠오른다. 우나라 재상 궁지기는 계략을 간파하고 우와 괵은 이와 입술 같은 사이로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주장하였으나 끝내 그의 주장은 무시되고 차례로 두 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갑자기 들이닥친 한파(넷플릭스)로부터 잇몸(콘텐츠)을 감싸고 있는 입술(플랫폼)이 성치 않으면 이(미디어시장)가 시리다고 하였다. 치아와 입술은 각기 다른 역할을 하는 다른 기관이지만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위기일수록 순망치한이 주는 교훈을 반추할 때이다.

마치며
지금 모든 회사는 일향전념으로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고 한계를 돌파하고자 하는 신 대항해시대의 막이 올랐다. 그러나 신항로 개척은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이기에 많은 시행착오와 암초 및 빙하 등 각종 악조건을 견뎌야 하며 때로는 목숨을 잃기도 하였다. 산악인에게도 아무도 가지 못했던 히말라야 신루트 개척은 14좌 완등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우며 많은 이들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경쟁사 광고카피에서도 인용되었지만 1491년 서유럽 스페인령 지브롤터해협 끝자락에는 ‘No more Ahead’란 글씨가 쓰여 있었고 모두 이곳이 지구의 끝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듬해 콜럼버스가 이곳을 지나치며 ‘More Ahead’라 외쳤다. 그러나 결국 그가 대서양을 횡단하여 인도로 알고 다다른 곳은 아메리카 대륙이었고 서인도제도라 칭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마젤란이 마젤란 해협을 지나 세계 첫 일주에 성공하였을 때도 구성원들 간의 내분과 싸워야 했고 질병, 추위, 굶주림 등을 견뎌야 했으며 정작 본인은 필리핀 원주민과 싸우다 죽어 결국 본국에 돌아오지도 못하였다.

오월동주라 하여 아무리 원수지간의 오와 월도 위기 상황에서 배에 오르면 화합한다 하였다. 지난달 22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합산규제에 관한 법안소위가 있었으니 최종 심사는 늦어도 2월 임시국회까지는 마무리될 것이다. 그 결과에 따른 M&A 활성화, IPTV와 손잡기 시작한 넷플릭스 약진 등 정체기에 들어선 미디어 산업은 정말 모든 구성원이 화합하여 노를 저어야 할 것 같다. IPTV와 Cable, 푹과 옥수수 M&A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인생도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듯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는 M&A 또한 그러하다. 쉽진 않겠지만 모두에게 득이 되는 방향으로 과거를 거울삼아 온고지신이든 법고창신이든 간에 시대의 흐름과 역행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학에서도 시대가 다르더라도 서로 공감하는 시의성이 있듯 역사에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단지 상황만 다를 뿐 본질은 반드시 되풀이되기 마련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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