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홍규 칼럼: 당신의 부모는 AI 세상에 안녕하십니까? 7회 ]
부모의 외로움을 로봇이 달래는 순간,
가족은 안도하면 안 된다
로봇이 문을 두드리는 순간
로봇이 부모님 방문 앞에 선다. 기둥처럼 늘어난 몸통 위에 태블릿 머리가 얹혀 있는 이 기계는, 자녀가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조종하는 대로 스스로 복도를 지나 방문 앞까지 다가간다. 부모님은 버튼을 누를 필요도, 전화벨 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도 없다. 화면이 켜지고 자녀의 얼굴이 나타난다. “엄마, 저 왔어요.”
이 장면은 더없이 다정하다. 그런데 그 다정함 한가운데, 이번 칼럼이 풀어야 할 질문 하나가 조용히 앉아 있다. 로봇이 부모님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바로 그 순간, 자녀는 정말 마음 놓아도 되는 걸까.
외로움이 실제로 줄어든다는 증거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로봇의 효과부터 확인해야 한다. 캐나다 캘거리대학교(University of Calgary) 연구팀이 2025년 9월 발표한 메타분석은 2003년부터 2024년까지 발표된 19개 연구, 참여자 1,083명의 데이터를 하나로 통합했다. (pmc.ncbi.nlm.nih.gov/articles/PMC12598933/pdf/gnaf219.pdf) 이들 대부분은 요양원이나 시설에서 반려로봇, 대화형 로봇 등을 실제로 제공받은 노인들이었다. 결과는 뚜렷했다. 사회로봇 개입은 노인의 외로움을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줄이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시설에 거주해 인간과의 접촉이 구조적으로 제한된 노인일수록, 그 효과는 더욱 컸다.
연구팀은 이 효과가 작동하는 방식도 설명한다. 노인들은 로봇의 몸짓과 말투에서 인간적이거나 동물적인 특성을 읽어내고, 그 반응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한다. 로봇이 정말로 무언가를 느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노인이 그것을 하나의 관계로 받아들이는 그 순간,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실제로 옅어진다.
부담은 줄고, 안도는 늘고
그렇다면 이 효과는 정작 가족의 삶에 무엇을 남길까.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간호대학 연구팀이 2025년 5월 발표한 연구가 그 답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연구팀은 텔레프레즌스 로봇(telepresence robot)을 요양원 거주자 18명과 가족 돌봄자 17명, 총 35명에게 두 달간 적용한 뒤 그 변화를 추적했다. (www.mdpi.com/1660-4601/22/5/713/pdf) 가족의 돌봄 부담은 유의하게 줄었고, 거주자의 삶의 질과 외로움도 나아지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특히 60세 이상 고령 돌봄자 집단에서 부담감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이 집단의 부담 점수는 기준 시점 25.0점에서 두 달 뒤 16.1점까지 떨어졌다.
수치보다 마음을 붙드는 것은 가족들이 남긴 말이다. 딸 루비는 이렇게 말했다. “로봇으로 접속하면 제가 여전히 엄마를 돌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엄마가 뭘 하고 있는지 보고, 제가 곁에 있다는 걸 알려줄 수 있으니까요.” 딸 세실리아는 로봇을 통해 아버지에게 크리스마스트리와 일상의 풍경을 보여주며 이렇게 전했다. “제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드리면 아버지가 행복해하세요. 언젠가 제 동생이 딸의 발레 공연을 보여드렸을 때, 아버지가 정말 기뻐하셨어요.” 연구팀은 눈이 와서 못 가던 날, 몸이 아파 방문이 어려웠던 날에도 가족들이 로봇으로나마 “안녕”이라 말할 수 있었고, 그만큼 죄책감과 스트레스가 줄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같은 연구에서 루비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로봇을 쓰긴 하지만, 그래도 저는 일주일에 세 번은 직접 찾아가요. 로봇이 그 시간을 대신하지는 않거든요.” 아들 루이스도 비슷하게 말했다. “로봇은 좋은 보완책이지만, 어머니는 직접 만나는 걸 더 원하세요.” 로봇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가족들 스스로는 로봇이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라는 선을 이미 분명히 긋고 있었던 것이다.
정작 그 로봇을 마주할 당사자는 다르게 말한다
효과는 확인됐고, 가족은 안도한다. 그렇다면 그 관계의 한가운데 있는 노인 자신은 이 로봇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미국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 사회복지대학원 연구팀이 2023년 2월 발표한 조사는 평균 연령 64세의 성인 825명을 대상으로, 대화형 동반자 로봇을 도입하기 전 사람들이 어떤 기대와 불안을 품는지 물었다. (www.frontiersin.org/journals/psychology/articles/10.3389/fpsyg.2023.1106633/pdf) “외로울 때 대화할 수 있는 인공 동반자(artificial companion)가 있다면, 외로움을 덜 느낄 것 같습니까?”
응답자의 68.7%가 부정적으로 답했다. ‘확실히 아니다’가 25.3%, ‘아마 아닐 것’이 43.4%였다. 나이가 많을수록 이 부정적 응답은 더 뚜렷해졌다. 같은 조사에서 “만약 자신에게 치매가 있다면, 주된 돌봄·지원자가 인공 동반자를 실제 사람이라고 믿도록 허용하는 것이 얼마나 편안하겠습니까?”라는 질문에는 69.3%가 불편하다고 답했다. 이번에도 나이가 많을수록, 여성일수록 더 불편해했다.
효과와 불신이 함께 존재하는 이유
세 가지 결과는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함으로써 하나의 그림을 완성한다. ‘로봇이 노인의 외로움을 줄이는가’라는 질문에는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효과가 가족에게는 무엇을 남기는가’라는 질문에는 죄책감과 부담의 감소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관계를 당사자는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라는 질문에는 상당수가 불편해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효과, 파급, 인식이라는 세 층위가 나란히 놓일 때, 비로소 오늘날 AI 기술의 온전한 얼굴이 드러난다.
이 세 층위를 겹쳐 놓으면 이런 그림이 그려진다. 로봇은 노인의 외로움을 실제로 줄인다. 가족의 죄책감과 부담도 실제로 줄인다. 그런데 그 관계를 몸으로 마주할 당사자인 노인 자신은, 그 관계를 온전히 신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참이라는 사실, 그것이 이 기술이 품고 있는 진짜 복잡함이다.
캘거리대학교 연구팀은 이 지점을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의 ‘총체적 기관(total institution)’ 개념과 연결해 해석한다. 요양시설처럼 일상적 사회관계와의 접점이 제한되기 쉬운 환경에서는, 로봇이 매개하는 상호작용이 관계의 공백을 일부 메울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다만 연구팀은 로봇이 인간관계를 대체하기보다 보완하도록 설계·활용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술이 사람 곁에 있어도 실제 인간적 연결이 줄어든다면, 오히려 고립을 심화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위험은 노인만의 몫이 아니다. 자녀에게도 고스란히 해당한다. 로봇을 통해 “안녕, 엄마”라고 말할 수 있게 된 순간, 죄책감은 줄어든다. 그런데 그 죄책감이 그동안 실제 방문을 이끌어내던 동력이었다면, 그 동력이 사라진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 앞서 소개한 가족들이 굳이 ‘로봇이 방문을 대체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되뇌었던 것은, 어쩌면 그들 스스로도 이 위험을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가족이 로봇보다 먼저 정해야 할 것
방법은 로봇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로봇이 무엇을 대신하지 않는지를 가족이 먼저 정해두는 것이다. 로봇을 설치하기 전, 가족 구성원끼리 최소 방문 횟수나 통화 빈도를 구체적인 숫자로 못 박아두어야 할 것이다. ‘여유가 될 때 로봇으로 연락’이 아니라 ‘일주일에 두 번은 직접 방문, 나머지는 로봇으로 보완’처럼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편리함이 슬그머니 의무를 잠식하지 않는다.
그리고 로봇을 통한 대화가 끝난 뒤에는, 부모님께 오늘 기분이 어땠는지 짧게라도 물어봐야 할 것이다. 로봇이 전한 것이 관계의 형식인지 실질인지는, 로봇이 아니라 그 대화 뒤에 남는 부모님의 표정과 말투로만 확인할 수 있다.
로봇이 대신할 수 없는 것
로봇이 부모님의 외로움을 줄여준다는 사실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 효과는 이미 여러 연구로 확인됐다. 문제는 효과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그 효과가 우리에게 무엇을 하게 만드느냐다. 로봇이 채워주는 그 빈자리를 보며 자녀가 느끼는 안도감은 분명 진짜다. 그러나 그 안도감이 방문을 대신하기 시작하는 순간, 로봇은 관계를 보완하는 도구에서 관계를 대신 치르는 알리바이로 조용히 자리를 바꾼다.
부모님을 외롭지 않게 하는 일과 자녀가 죄책감 없이 지내는 일은 서로 다른 문제다. 이 둘을 같은 것으로 착각할 때, 우리는 기술이 만들어 준 그 편안함 속에서 정작 가장 필요한 시간, 즉 직접 마주 앉아 눈을 맞추는 그 시간을 조용히 내려놓게 된다. 로봇은 부모님의 외로움에 가닿을 수는 있어도, 자녀가 그 곁에 앉아야 할 이유까지 대신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 그 이유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오직 우리 각자의 몫으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