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 이민상 CTS 기독교TV 상무

만나고 싶었습니다 – 이민상 CTS 기독교TV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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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이’로 태어나서

 

 

   
 

CTS 기독교TV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신 이민상 상무를 만나보았다. 큰 키에 싱글벙글 웃는 상무님을 뵈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오래전 일을 바로 어제 일인냥 상세히 얘기하시는 모습과 어린 기자를 일일이 챙겨주려는 세심함, 상대방을 편하게 만드는 쾌활함으로 인터뷰 내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제 그를 직접 만나 보자.

경력 : E B S 교육방송 <1979 ~ 2007>

C T S 기독교TV <2008 ~ 현재>

활동 : ① 사단법인 한국영상제작학회 부회장(現)

② 사단법인 한국직장선교연합회 이사 및 부회장(現)

③ 호원대학교 초빙교수(現)

④ 대한민국 영상대전 심사 등 20 여회 심사위원 역임

⑤ 기타 강연 강의 30 여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요. EBS 교육방송을 거쳐 현재 CTS 기독교TV에서 일하고 있는 이민상이라고 합니다. 강원도 춘천 출생이고 아내와 2남 1녀를 둔 가장으로 지금도 일할 수 있다는 것에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 EBS 입사에 대해 먼저 질문 드리겠습니다.

개인회사를 다니고 있다가 모집공고를 보았습니다. 당시 문교부 산하 기관인 한국교육개발원이라는 곳에 국정교과서 연구팀이 있었고, 1979년 3월 15일에 기술원 공채(카메라공채 1기)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기술국 인원은 130명 정도였고, 저는 기술국 제작 3실에 카메라파트를 맡게 되었죠. 스튜디오‧ ENG 카메라는 물론이고, 영상, VTR, 조명, 음향 등 로테이션으로 전 분야에 대해 기술과 지식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 79년이면 굉장히 오래전인데, EBS 초기 멤버시군요?

네, 제가 1987년 방송기술인연합회 EBS 초대 부회장을 했었습니다. 그전까지는 타 방송국들과 교류가 없다가 기술인연합회가 출범하면서 서로 소통이 되었죠.

그러다가 1990년 12월 27일 한국교육방송원 출범을 목표로 하게 되었습니다. 준비기간만 4개월이 걸렸었죠. 고생 정말 많이 했습니다. 체신부에서 연이어 밤을 새우며 출범 준비를 하기도 했고, 관악산 자체 송출을 위해 당시 케이블카가 없던 시절이라 걸어서 수없이 관악산 송신소를 왔다 갔다 했었죠. 그렇게 해서 1991년 11월 1일에 원활히 송출을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 그때 하신 고생과 에피소드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시죠.

한국교육방송원 출범을 위해선 체신부에서 허가가 났어야 했고, 필요한 관련 서류만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걸 일일이 준비하고, 찾아갔죠. 처음엔 상대도 안해주던군요. 그래도 계속 찾아갔습니다. 제 노력이 통했는지 27일 전인 25일에 허가가 났고, 참…. 크리스마스 선물인가 싶더군요. 송출 문제 때도 무작정 찾아가기를 반복하니 나중엔 그쪽에서 송출기 제원을 알려주어 1991년 11월 1일에 자체 송출이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에피소드는 1990년도에 당시 제 차(엘란트라)로 업무상 강원도에 갈 일이 있었는데(당시 새 차였는데 회사에 차가 없어 주구장창 제 차로 다녔었죠.(웃음)) 안개가 굉장히 짙게 껴서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주 오는 차와 사고가 나 죽을 뻔 하기도 했죠. 말도 마십시오. 일하면서 죽을 고비 여러 번 넘겼습니다.(웃음)

 

   
                    로마 바티칸 성당에서 부인과 함께

■ EBS 개국을 위해 굉장히 많은 고생을 하셨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 후 맡으셨던 일과 퇴직, CTS 입사에 대해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개국 후에 1991년 1월~93년 기술본부 기술관리 차장, 94년 관리부장, 95년 기술부장, 96년~2000년 미술부장, 2000~2002년 한국교육방송공사 초대 영상미술국장, 2003~2005년 위성준비단 SO 담당 국장급 위원, 2006년 사업팀장 등을 맡았습니다. 만 58세 때인 2007년 12월경에 정년퇴직을 하게 되었고요. 퇴직 당시 호원대에서 영상관련 강의를 맡고 있었는데 호원대학교 전임교수와 고향 춘천의 애니메이션 센터 근무, 개인 사업 등으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CTS 기독교TV 감경철 사장님의 권유로 크리스천으로 교단활동과 깊은 관련이 있고 EBS에서의 방송경험을 살리고자 하여, 전 MBC 안동방송사장 출신인 유제국(부사장)과 함께 임원인 사업이사로 입사를 했습니다. 2008년 상무로 승진을 했고 계속 근무 중입니다.

■ 네, 그런 경유로 현재 일을 하시고 계신 것이군요. 제직 시 기쁘셨던 일이 있으셨다구요?

2003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전국 120개의 SO를 상대로 EBS 수신료(플러스 1, 2 방송)를 얻어낸 일이 있는데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시 송출료가 한해에 8억 4천만 원 정도였습니다. 이걸 어떻게 메꿔볼 생각을 하다가 전국의 SO를 상대로 수신료를 받아야겠다고 생각이 들게 된 것이지요. 주위의 모든 인원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저도 될지 안 될지 명확한 판단이 안섰구요. 하지만 해보기로 했습니다. 전국의 SO 설득에 들어갔습니다. 일일이 방문을 하며 설득을 했죠. 처음 가서 승낙을 받은 곳도 있었고, 두 번, 세 번, 네 번 이상 가서 결국에 수신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첫해에 1억을 받았고, 아마 현재는 많은 수익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때 정말 기뻤고, 스스로 자랑스러웠습니다.

■ 정말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군요. 그렇다면 예전 경험이 현재 하시는 일에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해 여쭤보겠습니다.

네, CTS에 사업이사로 들어와 최초로 COEX에서 최초로 기독엑스포(2008)를 개최했고, 크루즈 성지순례(이스라엘, 그리스, 터키, 독일 지역)나 E-캠프(미국의 2, 3세대들이 한국어를 배우러 오는 일련의 일)등의 사업을 관장했습니다. 현재는 각 교계와 대형교회를 상대로 제작과 후원업무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제가 전에 일을 진행할 때, 무수히 찾아가서 일을 성사시켰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CTS에 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엑스포를 하는데 보통은 1년 전에 코엑스 예약을 합니다만 저희는 예약이 안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몇 번을 찾아가서 사정을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했지요. 설득하고 설득해서 마침 남아 있었던 곳(인도양)에서 기독엑스포 정식 계약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E-캠프 역시 예전 청학동 관련 행사를 했었고, 배낭여행에 대한 행사도 했었습니다. 주체와 참가인만 다를 뿐 내용은 비슷합니다. 이전 경험이 없었다면 애를 먹었겠지요. 하지만 이미 충분한 경험이 있었기에 큰 무리 없이 진행할 수가 있었습니다.

 

   
                                     88 올림픽 권투 EBS 생중계 당시의 이민상 상무(KBS와 함께 제작)

■ 말씀을 듣다 보니 공감이 가는군요. 고생도 많이 하시고, 여러 경험을 하셨는데 평생을 거쳐 생성된 상무님만의 가치관이나 신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우선 선조로부터 성실하고, 창조적이며, 도전적인 체질을 이어받아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나이”라는 어원의 유래가 저희 직계 조상(이춘부의 세 아들이 문하시중으로 많은 백성들에 귀감이 되었고, 이분들을 닮고자 하는 似那海)들로부터 왔습니다. 사나해가 사나이로 변화된 것이지요. 이런 조상 분들이 제게는 목표이자 귀감의 대상이었습니다. 또한, 증조부는 의병장으로, 조부는 목사이시고 독립투사이며, 부친은 목사로서, 가훈이 “무엇이든 하면 된다.”라는 도전 정신, 개척 정신, 애국정신을 중심으로 “할 수 있다 !”,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집안의 가훈이었고, 부친이 매번 언급하셔서 자연스럽게 제가 삶을 살아가는 중심이 되었지요.

■ CTS에서의 하루하루는 어떻습니까?

날마다 매우 기쁘고, 행복합니다. 또한, 보람됩니다. 제가 새벽기도를 갑니다. 새벽 5시부터 6시 40분까지 기도를 하고 7시 10분쯤에 출근을 합니다. 모두 긍정적인 생각과 활동이 근간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이 마음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젊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워드나 한글, PPT 같은 각종 서식도 제가 직접하고 있고, 카카오톡이나 포토샵도 능히 하고 있습니다. 앞서 가야 된다는 개척정신으로 핸드폰도 최신형 스마트폰으로 주기적인 교체를 하고 있고, 골프나 볼링, 바둑, 장기 등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제 나이(현 63세)에 활동적인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활동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사람 만나는 것이 좋아 EBS도 분기에 한 번씩은 꼭 가고 있습니다. 후배들을 만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곳이 여전히 마음의 안식처이기도 하고, 엔지니어만의 끈끈한 정이 있다고나 할까요?

또한, 제가 개국준비단 활동으로 내 손으로 준비했다는 자부심과 아울러 위성준비단에서 SO 송출료 전국 징수라는 큰 사업을 완료시켰기 때문에 저 스스로도 무척 보람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이런 경험 하나하나가 비슷한 다른 경험으로 이어지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베니스 여행 중의 사진

■ 퇴직을 준비하는 분들께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항상 추구하는 곳에 길이 있고, 준비하는 마음으로 현실에 최선을 다하면, 좋은 길이 열린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분명히 잘 된다는 신념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의욕적인 생각이 우리의 현실을 지배하게 될 때에, 즐거운 마음으로 항상 감사하는 표정을 만나는 이에게 전달할 때에 기쁨이 배가되는 경험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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