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천의 손자병법 인문학 – 이익과 손해를 동시에 생각하라

노병천의 손자병법 인문학 – 이익과 손해를 동시에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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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1세와 장개석의 수공

필잡어리해(必雜於利害) ― 『손자(孫子) 구변 제8편』

1915년 1월 9일 London News에 실린 일러스트 ‘크리스마스 정전’ 관련 일러스트 / 출처 : wikipedia
1915년 1월 9일 London News에 실린 일러스트 ‘크리스마스 정전’ 관련 일러스트 / 출처 : wikipedia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차디찬 전선의 적막을 뚫고 어디선가 찬송가 소리가 들려왔다. 독일군 중 누군가가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른 것이다. 이에 화답해 상대 진영에 있던 영국군도 캐럴을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독일군 장교가 진지에서 나와 영국군 하사와 악수를 했다. 이를 두고 크리스마스 정전(Christmas truce)이라 부른다. 이 정전은 정확히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은 1914년 12월 24일 영국군과 독일군이 벨기에 이프르에서 행했던 무언(無言)의 정전이다. 처음에는 참호선 중간지대에 첩첩이 쌓인 자기편 군인들의 시신을 회수하는 것으로 시작됐지만, 나중에는 상대편 진지까지 가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거나 심지어 편을 갈라 축구 시합을 벌였다고 한다(독일팀이 3대 2로 영국팀을 이겼다).

이 일이 있기 불과 두 달 전인 10월 20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이곳 이프르에서 첫 번째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다. 이프르는 의류 교역으로 유명한 플랑드르(Flandre) 중부에 있는 중심도시다. 프랑스어인 플랑드르는 ‘물에 잠긴 땅’을 뜻하고, 영국식으로 발음하면 플란더스(Flanders)가 된다. 영국 작가 위더 부인이 쓴 ‘플란다스의 개’의 작품 배경이 바로 플랑드르이기 때문에 ‘플란더스의 개’가 되었다. 이프르는 영국과 프랑스의 연합군 측 해협에 있는 항구를 방어하기 위한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독일군에도 이프르는 중요한 장소였지만 연합군으로선 이 지역을 빼앗기면 상대적으로 기동하기 쉬운 플랑드르 평야로의 진출을 허용하는 것이 된다. 10월 21일 독일군의 강력한 공격을 받고 연합군은 플랑드르 전선 전반에 걸쳐 후퇴하게 되었다. 플랑드르의 여러 해안 마을은 독일군의 공격에 의해 쑥대밭이 되었고 벨기에 국왕인 알베르 1세도 플랑드르 해안가의 작은 마을로 피신했다.

이제 길이 열려 독일군은 영국군과 벨기에군이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는 딕스마이데와 해안 요충지인 뉴포르트를 위협했다. 파죽지세로 달리는 독일군의 진출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연합군의 패배는 불을 보듯 뻔했다. 알베르 왕은 어떻게 하면 이들의 진출 속도를 늦출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바닷물을 막고 있는 수문을 열어서 마을을 물에 잠기게 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수년간 플랑드르 주민들에게 심각한 고통을 줄 것이 확실했다. 그러나 결심을 굳힌 알베르 왕은 주저 없이 수문을 열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때가 10월 27일이다. 그동안 저지대의 플랑드르 주민들은 피땀을 흘리며 바닷물을 막아 그 땅에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왔다. 다시 바닷물을 넣어 마을이 잠기게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실제로 바다에 잠겼던 이 마을은 6년이 지나서야 겨우 곡식을 재배할 수 있었다. 마침 10월 29일은 보름이어서 조류가 가장 높았고 바닷물에 의한 홍수 효과가 최대로 나타났다. 뉴포르트에 있는 중앙시스템의 주요 수문에 대형 다이너마이트가 장착돼 곧 커다란 굉음과 함께 수문들이 폭파되었다. 마을에 물이 차오르는 동안 연합군은 강의 제방이나 높은 곳으로 피신을 했다. 일주일 안에 북해의 홍수는 뉴포르트부터 딕스마이데까지 무려 16㎞에 걸친 지역을 덮었다. 결국 독일군은 그 후 거대한 홍수의 장벽을 넘지 못했고 마침내 지루한 참호전으로 돌입하게 된다. 크리스마스 정전은 바로 이 플랑드르 홍수 두 달 후에 일어났던 참호전에서의 해프닝이었다.

1914년의 크리스마스 정전 당시 영군군과 독일군의 축구 시합 사진 / 출처 : www.indymedia.org.nz/events/3367
1914년의 크리스마스 정전 당시 영군군과 독일군의 축구 시합 사진 / 출처 : www.indymedia.org.nz/events/3367

홍수로 적의 진격을 늦추려고 시도한 비슷한 사례가 동양에서도 있다. 1938년 중일전쟁 당시 수세에 몰린 장제스(蔣介石)는 화북에서 무한(武漢) 방향으로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일본군을 막기 위해 고심 끝에 황하(黃河)의 제방을 무너뜨리는 일을 결행했다. ‘물로써 군대를 대신한다(以水代兵)’는 병법에 따른 것이다. 제방을 무너뜨리는 것을 중국어로 결제(決堤)라고 한다. 장제스가 행한 결제는 6월 9일에 정주 북쪽 화원구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화원구 결제’라고 부른다. 당시만 해도 일본군의 진격은 일단 저지돼 장개석의 작전이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잠시 진격 속도를 지연시켰을 뿐 얼마 후 무한은 일본군에 점령당하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무너진 제방 때문에 큰 재앙이 발생했다. 수일 후 상류 지역에 폭우가 쏟아졌고, 제방 붕괴 지점에서 또 다른 대규모 붕괴가 발생하면서 상상을 초월한 대홍수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하여 남한 면적의 절반을 넘는 지역이 침수됐고, 1250만 명의 이재민과 89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때의 후유증으로 장장 9년 동안 하남성과 안휘·강소성 일대가 거대한 물바다로 변했다. 황하는 중국이 공산화되기 이전에 1000년간 크고 작은 붕괴가 1500여 차례 있었고, 대규모로 물길이 바뀐 것도 26차례였다. 하지만 화원구 결제의 경우처럼 오랫동안 후유증을 남긴 엄청난 피해는 없었다.

손자병법 화공(火攻) 제12편에는 불로 공격하는 화공(火攻)과 물로 공격하는 수공(水攻)에 대해 나온다. 손자병법 전체를 통해 수공에 관한 내용은 이것이 유일하다. ‘불로 공격을 도우려면 현명해야 하고, 물로 공격을 도우려면 강해야 한다. 물로 적을 고립시킬 수는 있어도 가히 빼앗을 수는 없다’(以火佐攻者明 以水佐攻者强 水可以絶 不可以奪). 조금 더 알기 쉽게 풀면 이렇다. 화공은 불을 놓기에 적절한 시간대와 풍향 그리고 유리한 장소 등 여러 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따져야 하기 때문에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수공은 수공 후에 혼란에 빠져 있는 적을 향해 곧바로 공격할 수 있는 강한 전투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수공으로는 적을 잠시 고립시킬 수는 있어도 근본적으로 적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장제스의 화원구 결제 사례를 볼 때 손자의 이런 지적은 정확하다. 일본군의 진격 속도를 지연시킨 것은 분명했지만 그들을 제거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손자병법 구변(九變) 제8편에 보면 이와 관련된 어구가 나온다. ‘지혜가 있는 자는 반드시 이익과 손해의 양면을 동시에 생각한다’(智者之慮 必雜於利害). 어떤 상황을 보고 판단할 때에 어느 한 면에만 치우쳐 결정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 어떤 것에도 100% 좋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어떤 것에도 100% 나쁜 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속단(速斷)은 언제나 금물이다. 한쪽에만 치우친 단정적인 판단은 위험하다. 알베르 1세와 장제스는 물을 이용한 지연 전략을 시도했다. 그 발상은 같았다. 그러나 결과는 확연히 달랐다. 알베르 1세는 성공했고 장제스는 실패했다. 결과론적이지만 장개석은 당시 상황에서 수공을 해선 안 되었다. 황하를 잘못 건드렸다. 수공의 해(害)보다는 수공의 이(利)에 치우쳐 생각하고 판단한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상황이 급급해지면 손해 측면보다도 이익 측면에 치우쳐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사람 심리다.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게 있다. 베트남전쟁 당시 1965년부터 8년간 베트남 전쟁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석방된 스톡데일 장군은 수용소에서 죽은 많은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모두 낙관주의자들이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그들은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나갈 수 있을 거야’라고 말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다가 크리스마스가 지나간다. 그러면 ‘부활절까지는 나갈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한다. 그러다가 부활절이 지나간다. 그러면 ‘추수감사절에는 나갈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한다. 그러다가 추수감사절이 지나간다. 그러면 또다시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그러다가 마침내 상심해서 목숨을 잃었다.” 이것이 바로 대책 없이 막연한 낙관론을 펼치는 이들의 결말이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가 말한 대로 ‘절망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된 것이다. 어떤 상황을 만나더라도 반드시 이해(利害) 양면을 동시에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한쪽에 치우치면 안 된다. 균형 있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위기를 만나면 결국에는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은 잃지 말되, 눈앞에 닥친 현실 속의 가장 냉혹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인생을 살면서 꼭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균형 있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必 雜 於 利 害

반드시 필 섞일 잡 어조사 어 날카로울 리 해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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