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준 KBS 제작기술국 조명감독

[인터뷰] 허 준 KBS 제작기술국 조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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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비추어 공감을 전하는 조명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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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제작에서 조명은 공간을 만들고, 분위기를 만든다. 무대와 상황에 따라 다채롭게 변화하는 조명은 제작시간 내내 관객과 소통하며 연출자의 의도를 반영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지난 30여 년간 KBS 조명을 책임지며 다양한 쇼 프로그램을 제작해 온 허 준 조명감독은 조명은 결국 사람의 감정을 전달하는 일로 시청자가 공감하는 조명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비가 오던 어느 여름날, KBS 홀의 대표 프로그램인 <열린음악회>를 제작하고 있던 허 준 조명감독을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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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소개

안녕하세요. KBS에서 조명 일을 하는 30년 차 조명디자이너 허 준입니다. 현재 KBS 홀의 조명을 맡고 있습니다.

 

◊ 그동안 제작했던 프로그램
정말 많은 프로그램을 제작해 왔습니다. 교양으로는 <아침마당>, 드라마로는 <올드미스다이어리>, 예능으로는 <개그콘서트>, <비타민>, <스펀지>, 쇼로는 <뮤직뱅크>, <가요무대>, <불후의 명곡>, <유희열의 스케치북>, <국악한마당>, 그밖에 선거 개표방송, 연말 각종 시상식 등이 생각납니다. 지금은 <열린음악회>를 맡고 있고, 최근 <청룡영화상>, <서울예술상>, <K 가곡 슈퍼스타>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 조명에 대한 이해를 높였던 프로그램
사실 제작하는 모든 프로그램이 다 배움의 터전입니다. 처음 조명을 시작할 때 각각 조명의 쓰임과 특성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 이후 컨벤셔날 라이트 콘솔, 이펙트 콘솔을 다루면서 하나하나 프로그램을 겪으며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맡을 때 많이 고민됐던 프로그램은 <개그콘서트>였습니다. 초창기 포맷은 대학로 개그 공연을 방송에서 하는 컨셉이라 각 개그씬을 살려줘야 했고, 각 코너의 특성을 보여줘야 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가요무대>, <국악한마당>이 기억에 남습니다.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호리젼트 조명의 터치와 페인팅을 위주로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가요무대>에 주로 나오는 음악들은 해방 전후와 50년대 60년대 음악이었습니다. <국악한마당>은 더 말할 것도 없고요. ‘그 음악들이 무엇을 말하는가, 정서는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질문하곤 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음악창고>를 들 수 있습니다. 인디밴드가 주로 출연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우리나라에 이렇게 다양한 장르를 연주하는 팀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어느 특정 프로그램으로 실력을 키웠다기보다도 한 프로그램, 한 프로그램을 하면서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고 거기에 맞는 조명을 고민하고, 끝나고는 과연 정답이었는지 고민하면서 여기까지 온 거 같습니다. 최근에 기억에 남는 방송은 <서울예술상>이었습니다. 순수 예술을 방송으로 옮기는 과정이 새로운 도전이었고, 그 경험 덕에 조명이나 예술을 보는 시선이 조금 더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2017년 10월, Prolight+sound Shanghai에서 Lighting Design For Music Show을 주제로 강의한 허 준 조명감독
2017년 10월, Prolight+sound Shanghai에서 Lighting Design For Music Show을 주제로 강의한 허 준 조명감독

 

◊ 조명디자이너로서 무대와 공간, 그리고 곡의 해석을 위한 노력
먼저 그 프로그램이나 그 곡이 무얼 말하는지 정체성을 파악하는 게 우선입니다. 그리고 그 정체성을 세 문장 이내로 정리해야 합니다. 어느 시대인지, 어느 공간인지, 하루에 어느 때인지, 어느 계절인지, 그리고 어떤 감정인지 같은 거죠. 그걸 통해서 현재 무대의 조명기와 세트를 활용해 그걸 표현하려 합니다. 예를 들면 <열린음악회>에서 뮤지컬 공연을 가끔 합니다. 먼저 그 뮤지컬이 어떤 내용이고, 지금 연주하는 곡이 극 중의 누가 어떤 감정을 말하는지, 혹은 무슨 상황을 말하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그럴 때는 예쁘기만 한 조명이 오히려 오답인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강한 콘트라스트로, 때로는 그로테스크한 인물 페인팅으로 그 상황과 감정을 전달하려 합니다. 제가 집필한 『미디어조명디자인』을 참고하시면 좀 더 도움이 되실 것 같네요.

허 준 조명감독이 집필한 『미디어조명디자인』
허 준 조명감독이 집필한 『미디어조명디자인』

 

◊ 조명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포인트
요새는 인터넷이 잘 되어 있어 제가 처음 조명을 시작할 때보다 각종 자료를 찾기 쉬워졌습니다. 과거보다 공부하기에는 수월한 환경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조명에 과연 관객, 시청자가 공감했나’입니다. 그게 미디어 조명디자이너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자기만족에 빠져서 제일 중요한 관객을 놓치는 분들이 눈에 띕니다.

 

◊ 조명 제작에서 ‘미러볼’과 같은 조명 기기 사용에 대해
미러볼을 말하기 전에 ‘조명 아키텍트’라는 개념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건축가가 벽으로 공간을 만들 듯, 스튜디오, 무대에서 조명디자이너는 빛을 사용해서 다양한 공간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한 구조물, 장치, 조명기기들을 쓰는 것이고 그런 것들을 통틀어 ‘조명 아키텍트’라 부릅니다. 결국, 시청자나 관객은 조명이 어떻게 쓰였나 보다, 그 순간의 퍼포먼스와 공간을 경험하고 기억합니다. 미러볼은 공간의 확장과 집중, 그리고 박자의 타격감으로 주로 씁니다. 레이저 역시 공간의 재구성 즉 수축과 팽창의 느낌을 만드는 데 사용하며 그밖에 LED BAR형 빔, ‘크레이지바’나 ‘토네이도’를 운용합니다.
2025년 <청룡영화상>에서 가수 이찬혁의 공연에서는 아예 트러스에 몇십 대의 조명기기를 설치하여 LED 스크린을 끄고 그 트러스로 전환하여 수상식의 공간 개념을 바꿨습니다. 특정 오브제, 조명기기를 즐겨 쓰기보다 그 상황에서 제일 적합한 게 무엇인가를 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제 개인 블로그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시뮬레이션과 제작 결과 비교
<청룡영화상> 시뮬레이션과 제작 결과 비교
 세트 도면
<서울예술상> 세트 도면
 조명 도면
<서울예술상> 조명 도면

가시나무

 조명 디자인
<열린음악회> 조명 디자인

레이져

 조명 디자인
<불후의 명곡> 조명 디자인
 조명 디자인
<서울예술상> 조명 디자인
 조명 디자인
<청룡영화상> 조명 디자인


◊ LED 조명으로 변화하는 조명 산업 변화

LED로의 전환은 단순한 에너지 절감이 아니라, 4K HDR 및 UHD 방송 환경에서 연색성과 색온도의 정밀한 제어가 가능해졌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LED의 장점인 유연성으로 다양한 개념의 장비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미 세계 유수의 조명제조업체들이 할로겐램프와 할로겐 기기의 생산을 중단했습니다. LED는 미래가 아니라 현실입니다. 반대로 아직 할로겐 장비 특유의 빛의 질감, 컬러(Color)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는 취향의 영역으로만 끝나지 않고, 필요한 그 순간에 할로겐 장비를 꺼내 드는 조명디자이너도 있을 거 같습니다.

리허설에서 무대 조명을 체크하는 허 준 조명감독
리허설에서 무대 조명을 체크하는 허 준 조명감독

 

◊ 조명 제작에서 AI의 활용
AI는 반복 작업을 줄여주는 좋은 도구입니다. 대신 무엇을 표현할 것인지는 여전히 사람이 결정해야 합니다. 현재 AI는 단순 제어를 넘어 Python이나 OSC, Vectorworks SDK 기반의 디자인 자동화 및 시뮬레이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이는 디자이너가 연출적 본질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돕는 도구입니다. 아직 눈에 띄는 성과는 안 보이지만 언젠가 올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생각의 외주화’입니다. AI가 하는 판단에 의존해서 정작 조명디자이너가 할 작업과 판단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AI에 종속되어 업의 본질을 잃어버리게 되죠. 또 현장에서의 설치작업입니다. AI를 오해하는 분들은 그 부분이 제일 먼저 자동화되리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그 부분이 자동화되려면 아주 질 좋은 ‘피지컬 AI’가 상용화되어야 합니다. 이는 경제적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AI를 잘 사용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조명이란 업무의 본질에 더 집중하고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게 돕는 도구지, 조명디자이너 그 자체가 아닙니다. 이는 다른 영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제 상세한 의견 역시 블로그를 참조하시길 부탁드립니다.

 

◊ 조명감독 / 디자이너로서 업무에서 어려운 점
대한민국에서 조명 업무는 시간이 많이 주어지는 작업이 아닙니다. 저 같은 경우도 한창 일할 때, 일주일에 기본 세 개의 음악프로그램을 했습니다. <불후의 명곡>, <유희열의 스케치북>, <뮤직뱅크> 그 외에도 각종 특집 프로그램을 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일주일에 몇 곡이나 조명 큐를 짜고 제작하는지 생각해 보니 평균 50여 곡이 넘었습니다. 지금도 그때보다 여건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저를 더 힘들게 한 것은, 방송국 내에서도 조명의 역할이 충분히 공유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모르는 분들이 하는 말들, 정책들로 생각해 보면 더 많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곡을 해석하며 조명 디자인과 고려 사항을 체크하는 허 준 조명감독
곡을 해석하며 조명 디자인과 고려 사항을 체크하는 허 준 조명감독

 

◊ 업무를 해오며 가장 보람 있고, 기억나는 순간
조명 일을 하면서 번아웃이 오거나 ‘내가 왜 이걸 하지?’ 하는 좌절감이 오는 순간들이 몇 번 있었습니다. 비단 저만 그런 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를 극복하게 해준 순간들이 있습니다.

가장 최근은 올해 4월 <서울예술상>을 제작할 때입니다. 지난해까지는 ‘국립극장’에서 열렸는데 올해부터 ‘KBS홀’에서 제작했습니다. 아마도 순수 예술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방송’을 전제로 KBS에서 열린 것 같습니다. 기존의 방송과 다른 순수 예술을 방송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이 부딪쳤고, 그 상황에 맞춰 제작해야 했습니다. 시상식 말미에 평생공로상을 받으신 ‘박정자’ 배우님이 수상소감에서 이례적으로 KBS홀 조명을 언급하고 치하를 하셨습니다. 상을 받기 전 객석에서 공연을 봤는데, 조명이 무척 좋았다는 것이었습니다. 60년 넘게 무대를 지킨 대배우님의 말씀이라 무척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조명을 단순히 무엇을 비추는 게 아니라 무대에서 아티스트와 같이 얘기하는 동반자로 보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가족사진’이라는 영상입니다. 십여 년 전 불후의 명곡에 참여할 때 ‘김진호’라는 가수가 연주했습니다. 당시 객석 분위기도 숙연했고, 방송이 나가고 지인에게 전화가 왔는데, 부모님이 그걸 보면서 너무 우시더란 것입니다. 그리고 잊었는데 유튜브를 공부할 기회가 있어, 공부하다가 우연히 이 영상을 열어 보았습니다. 엄청난 조회 수와 수많은 댓글과 대댓글로 하나의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그 안에 많은 가슴 아픈 사연들과 위로 들이 있었습니다. 방송이란 건 휘발성이 있어 끝나면 날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모르는 사이에 공감과 치유의 아름다운 세계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우울할 때 한번 이 링크에 들어가서 음악뿐만 아니라 댓글들을 읽어 보세요. 많은 위안이 될 겁니다.

 

◊ 그동안 겪었던 업무 관련 에피소드
조명은 항상 예측대로 안 흘러갑니다. 그 지점이 재미있습니다. 갑자기 내일 생방송하라고 하고, 갑자기 취소되고 그렇습니다. 결국, 사람과의 상황이 제일 재미있었던 거 같습니다.

첫째, ‘조영남’ 선생님 얘기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분은 자유로운 영혼이십니다. 방송으로 몇 번 만났는데, 언젠가 특집 쇼를 할 때입니다. 요구 사항 중 본인이 무대에서 이런저런 자리에서 서 있을 때 탑 조명을 주고 다른 조명은 꺼달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얘기했죠. 그러려면 정확히 그 타임에 그 자리에 계셔야 한다고요. 대답은 자기는 그렇게 못한 다였습니다. 그리고 방송 당일 리허설을 진행했습니다. 특유의 “한 번 더, 한 번 더” 하시면서 리허설마다 다르게 연주했습니다. 제가 찾아가서 본방송에서는 어느 버전으로 연주하실 거냐고 여쭤봤죠. 눈을 껌벅껌벅하시면서 “난 그런 거 기억 못 해” 하시더군요. 그때 ‘조명 애드립’이란 것을 배웠습니다.

두 번째는 ‘이효리’ 씨입니다. 핑클이 한창 활동 당시, 저는 조명 조감독으로 무대(플로어)를 담당했습니다. 당시는 조명 기구들이 자동화가 안 되어서, 무용이나 관련 조명기를 수동으로 조작해야 했습니다. 저는 무대 구석에서 조명기를 맞추고 있었습니다. 핑클 멤버들과 남자 무용수들이 짝을 이루어 포즈를 잡고 있었습니다. 곧 방송이 시작되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한 핑클 멤버가 마이크로 남자 댄서를 쿡쿡 치면서 장난을 하고 있었습니다. 뭐지 하면서 보니까 ‘이효리’ 씨였습니다. 저랑 눈이 마주쳤는데 “뭐”하며 당돌하게 쳐다보는 표정이었습니다. 장난기도 장난기지만 그 배짱이라고 하나 방송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는 그런 모습이 무척 인상에 남았습니다.

세 번째는 ‘송해’ 선생님입니다. 이분은 재미보다 경이로움을 느끼게 했습니다. 아마도 이분의 마지막 방송이라 생각됩니다. 특집 쇼를 하는데 몇몇 부분은 사전 녹화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PD가 와서 오늘 녹화가 어려울 것 같다고 하더군요. 선생님이 컨디션이 너무 안 좋으셔서 대기실에 누워 계시는데 대본이라도 읽으셨는지 모르겠다고요. 그리고 녹화시간 어두운 스튜디오에 부축받으시며 들어오셨습니다. ‘무척 힘드시겠다. 녹화가 힘들겠네!’라고 판단했는데 조명이 켜지자, 선생님 특유의 유머와 애환을 섞으셔서 녹화를 이어가셨습니다. 너무나 다른 모습에 놀랐습니다. 왜소한 90의 노인이 아니라 그야말로 스타셨습니다. 그날 ‘저분은 저렇게 사시는구나. 내 나이가 어때서 하고 부르는 노래가 진심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향후 조명 산업 변화에 대해
‘트레이드오프’를 생각해 보세요. 과거 백열등이 나왔을 때 우리의 공간과 생활은 어떻게 변했나요? 어둠을 밝히는 빛의 가치는 내려간 대신에 공간의 가치가 올라갔습니다. 비로소 사람들은 밤에도 일을 하고, 여가를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이뤄질 공간이 중요해진 거죠. 무엇이 흔해져서 가치가 내려가면 대신 그것이 가지지 않은 다른 것의 가치가 올라갑니다. LED나 AI 같은 장비의 발달로 ‘기술적 구현’의 장벽은 낮아질 것입니다. 따라서 미래의 조명 산업은 단순히 빛을 쓰는 기술자가 아니라, 공간을 설계하고 서사를 완성하는 ‘Visual Storyteller(비주얼 스토리텔러)’의 역량이 핵심 경쟁력이 될 것입니다. 서사의 핵심은 관객과의 공감입니다. 장비나 시설을 잘 쓰는 것보다, 어떻게 쓰는가의 부분이 더 중요해지겠죠.

 

◊ 선배 조명 디자이너로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참 많은데 몇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먼저 건강과 멘탈을 챙기세요. 조명이란 일은 단거리가 아니라 장거리 게임입니다. 너무 조급해하거나, 지금 당장의 일에 ‘일희일비’하지 마세요. 늘 몸과 마음을 좋은 상태로 유지하도록 노력하세요.
그리고 항상 “왜?”라는 의문을 가지세요. 처음 조명을 시작할 때 배웠던 그대로만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맥락을 이해하고 “그때는 왜 이렇게 했나,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일들이 많습니다.
늘 자기의 작업을 피드백하세요. 방송되고 나서 내가 뭘 잘하고, 못했나 파악할 때 조명 실력이 가장 많이 늡니다. 영상만 보지 말고 댓글을 읽으면서 시청자들이 무엇에 반응하는지 살펴보세요.

마지막으로 제작 기술의 본질을 정의해보세요. 제가 생각하는 제작 기술은 기기나 시설 즉 테크놀로지를 바탕으로 콘텐츠를 대중에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조명을 포함해 방송기술 전반에서 자신이 하는 프로그램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지 않는 분들이 눈에 보입니다. 장비나 시설이 주인공이 되어, 제작이 일어나는 현장의 상황을 거기에 맞추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다루는 테크놀로지는 콘텐츠를 대중에게 이야기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장비는 계속 바뀌었습니다. 할로겐에서 LED로, 그리고 이제 AI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30년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은 하나였습니다. 조명은 ‘결국 사람의 감정을 전달하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지만, 공감을 만드는 일은 여전히 현장의 제작 기술인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적 소양, 음악과 대본에 대한 이해, 그리고 타 분야(연출, 미술, 카메라)와의 끊임없는 소통에 집중하시기를 바랍니다.

 

◊ 마지막 한 마디
30년간 현장에서 축적한 경험과 철학을 책(『미디어조명디자인』)과 블로그, 교육을 통해 지속적으로 업계와 후배들과 나누고, 여전히 새로운 무대와 예술을 만날 때마다 설레는 ‘현역 디자이너’로서 끊임없이 빛으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프로그램의 전체 조명을 관리하는 허준 조명감독
프로그램의 전체 조명을 관리하는 허준 조명감독

 

“조명은 ‘결국 사람의 감정을 전달하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지만, 공감을 만드는 일은 여전히

현장의 제작 기술인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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