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한 밤 잠 주무셨어요? ②

포근한 밤 잠 주무셨어요?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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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말, 지상파 종일방송 시대가 열렸습니다. 하지만 방송기술인으로서 마냥 기뻐할 수는 없습니다. 업무는 늘어나게 되었고, 이에 따른 대책은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방송기술인의 건강이 심히 걱정되는 부분이며, 시급한 인력보강과 업무조정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방송과기술󰡕은 새해를 맞아 방송기술인과 때려야 땔 수 없는 야근과 교대근무에 따는 건강에 대한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저번 호에서는 야근이 수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았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수면의 소진에 따른 증후군 현상. 즉, 소진 증후군의 의미와 해결책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방송기술인을 비롯한 유사 직종에 계신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야근과 소진 증후군(Burn-Out Syndrome)

현대 사회를 피로 사회라 한다. ‘열심히만 살면 행복할 것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와도 같은, 삶의 에너지가 다 소진된 사회’란 표현이 무섭도록 서글프다. 삶의 에너지는 감성 에너지이다. 우리 뇌의 심부, 감성의 뇌가 스마트폰의 배터리 역할을 한다. 우리 뇌의 감성 배터리는 전기 에너지가 아닌 삶의 의미라는 콘텐트를 에너지로 사용한다. 필자의 클리닉엔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가고 싶다는 분들이 많다. 시골로 내려가는 것이 삶의 충전에 도움이 된다면 긴 진단서라도 써 드리겠지만 우리의 상식과 달리 멀리 가고픈 것은 ‘심리적 회피 반응’이란 소진 증후군의 증상일 뿐 시골로 내려간 들 삶의 충전이 일어나지 않는다.

소진 증후군 체크리스트

1단계 초기 3대 증상

1) 잠이 잘 오지 않고 깊은 잠을 자지 못한다

2) 집중력이 떨어지고 치매에 걸린 것처럼 깜빡깜빡한다

3) 이전에는 그냥 넘어가던 일에도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

 

2단계 심리적 회피 반응

4) ‘다 때려치우고 어디로 떠나고 싶다’

 

3단계 행복에 대한 내성(resistance)

5) 일에 대한 열정이 사라짐

6) 사람을 단순 대상으로 여김

7) 일의 의미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음

 

* 3개 이상이 지속된다면 당신의 감성 에너지는 충전이 필요한 상황이다.

 

소진 증후군의 가장 좋은 예방책이 삶의 의미를 느끼며 사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소진 증후군의 핵심 증상이 삶의 의미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니 증상과 예방책이 같아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한 번 방전되기 시작하면 악순환의 늪에 빠져들기 십상이다. 소진 증후군은 개인의 삶도 지치게 하나 업무 능력 저하와 직결되기에 최근 조직 관리에 핵심 이슈이다. 창조성과 강한 도전이 경쟁 사회에 꼭 필요한 에너지이나 소진 증후군에 빠진 감성은 더 이상 이것을 제공하지 못한다. 소진 증후군 해결은 기업 지속경영과 깊이 연관된 사안이다.

 

야근은 소진 증후군의 위험요인이다. 소진 증후군의 가장 흔한 생리학적 증상이 수면 문제인데 야근은 저번 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수면의 질을 현저히 떨어트린다. 야근 자체가 주간 업무에 비해 감성 노동의 강도가 큰데 오히려 감성 에너지를 충전시킬 수면의 양과 질이 좋아지지 않으니 소진 증후군에 빠지기 쉽다. 업무라는 것은 감성의 창조적 에너지 위에 이성적인 기능이 원활히 작동해야 하는데 소진 증후군의 두 번째로 흔한 증상이 건망증, 즉 집중력의 저하이다. 기능성 인지장애가 오는 것이다. 업무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 뇌는 피로해지면 예민도가 증가하여 인간관계에 매우 가파른 감정 반응을 보이게 된다. ‘우리 팀장님, 이전에 잘 멘토링 해주셨는데 성격이 이상해졌나. 너무 요즘 짜증이 많아지셨어’란 팀원의 말, 소진 증후군에 빠진 팀장의 관계 예민도 증가를 뜻한다. 성격이 변한 것이 아니라 뇌가 피로해 작은 것에도 강하게 반응하게 된다. 공감 능력의 저하가 오는 것이다. 감성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워지니 소통 단절이 되고 조직 전반의 피로도가 올라가게 된다.

개인의 건강증진을 넘어서 조직 생산성 유지를 위해서도 야근 근무자에 대해서는 금전적 보상 이외에 감성 에너지 충전을 위한 추가적인 지원 전략이 필요하다, 야근 후에는 충분한 휴식 시간이 주어져야 하고, 하루 이상의 야간 업무인 경우 생체 주기를 지키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빠른 주․야간 업무 변동은 좋지 않다. 업무 시간 변동 사이에는 생체 주기가 돌아올 때까지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다. 휴식은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수면이 이루어져야 하고 가벼운 운동 또한 큰 도움이 된다. 수면 공간, 피트니스 공간의 지원이 이루어짐이 장기적 업무 능률 향상에 도움이 된다.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면 행복에 대한 불감을 일으키는 소진 증후군, 그리고 그것의 명확한 위험요인인 야근을 조직이나 개인 차원에서 평면적인 업무량 증가라 보아서는 안 된다.

조직 차원의 지원과 더불어 개인적인 노력 또한 필수적이다. 간단한 tip을 아래에 소개하겠다.

 

   
 

소진 증후군 해결을 위한 Tip

요즘 힐링이 대세다. 힐링 관련 서적과 미디어 콘텐트가 주목을 받는다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그만큼 우리 마음이 지쳐 있다는 반증이기에 서글픈 마음 또한 크다. 그리고 가치 있는 단어도 상업화되면 그 본질을 상하는 것처럼 힐링이 더는 힐링 효과가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또한 앞선다. 그 이유는 힐링은 화려하고 복잡한 콘텐트가 아닌 ‘깊은 지루함’에서 이루어지는 매우 생물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치유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방전된 감성 에너지를 충전시킬 방법, 현대 의학에서 입증됐고 그 이전 이미 그리스 철학, 동양 철학에서 제시된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 사람과의 따뜻한 교감

‘솔직히 자신을 내놓고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인가’가 최근 행복과학 연구에 있어 제1번의 행복 요건이다. 멜로드라마를 보면서 갑자기 눈물이 나와 놀란 중년 남성들이 외래를 찾아온다, 자신에게 병이 생긴 것 아니냐며, 생존을 위해 용사로 살던 남자들도 나이가 들수록 감성적인 욕구가 커진다. 지쳤기 때문이다. 사랑받고 위로 받고 싶기에, 사랑의 콘텐트에 강렬하게 반응한다. 필자의 클리닉엔 사회적으로 부러울 것 없을 만큼 성공했으나 그 한 명의 친구가 없어 찾아오는 어르신들이 적지 않다. 우리가 열심히 부를 키우고 사회적 지위를 올리는 갈망의 심정에는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가 자리한다. 무의식적으론 사랑받고 싶어 열심히 산 것이다. 그러나 희생적으로 열심히만 살다 보면 막상 관계에 소홀하게 된다. 비즈니스 이슈가 없는 미팅을 잘 못 갖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지위가 올라갈수록 소탈한 만남 또한 어려워진다. 자리를 통한 쾌감은 일시적이고 노년기의 삶을 더 고독하고 소진하게 만든다. 한 달에 최소한 2번, 비즈니스 관계없는 소탈한 우정의 나눔만 한 충전의 에너지원은 없다. 고령화 사회이기에 내가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나이 어린 젊은 친구를 확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70세의 내게 50세 친구가 있다면 그 어린 친구가 계속 삶을 나누고 인생의 멘토링을 원할 때 우리 감성은 꽉 차는 충전의 느낌을 가진다. 그런 측면에서 나의 자녀는 최고의 젊은 친구 대상이다. 잔소리는 자녀와 거리를 멀게 한다. 최소 일 년, 인내를 가진 눈높이 공감 대화가 자녀의 마음을 열게 한다.

 

▪ 자연과의 따뜻한 교감

바캉스의 어원이 쉰다는 뜻이 아닌 ‘자유를 얻는다’는 뜻이다. 단 하루에 10분이라도 사색하며 걷는 자유의 시간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사색은 업무나 집안일은 잠시 접어 두고 이성의 스위치를 끈 체 감성의 뇌가 느리게 움직이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하늘, 자연, 사람’에 집중하고 걸어보자. ‘아 오늘 파란 하늘이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음 날씨가 많이 추워졌네’. 하는 여유로움에 우리 감성의 뇌는 주변 상황을 평화 상태로 인식하고 충전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깊은 지루함을 느끼지 못함이 현대인의 문제’라 한 니체의 말처럼 우린 너무 정신없이 열심히만 일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열심히 일하여 삶의 좋은 결과물을 내는 것과 그 결과물에 대해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은 별개의 과정이다. 따라서 열심히만 살다 보면 어느 날 뒤를 돌아보았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 허무와 좌절을 느끼기 쉽다. 단 하루에 십 분이라도 조용히 사색하며 걷는 과정이 내 하루의 일과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동시에 생물학적인 스트레스의 누적을 날려 버리는 효과 또한 있다. 나의 마음을 근사하게 만들어 준다. 이런 작은 활동이 치매 예방이란 거창한 생물학적 효과와 연관된다는 연구 결과가 이상하지 않다. 조물주가 만들어 놓기를 삶의 행복과 충전은 순수한 자연과의 소통 그리고 인간과의 위로에서만 일어나게끔 우리 뇌가 설계되어 있다. 세상에 가장 행복한 사람은 소탈한 마음을 유지한 체 많은 것을 이룬 사람이다. 마음이 소탈한 사람만이 자기가 이룬 것을 제대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우정 또한 소탈한 사람 간의 감성 공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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