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안 속아”가 가장 위험하다: 확신이라는 이름의 함정

“나는 안 속아”가 가장 위험하다: 확신이라는 이름의 함정

[ 최홍규 칼럼: 당신의 부모는 AI 세상에 안녕하십니까? 6회 ]

“나는 안 속아”가 가장 위험하다: 확신이라는 이름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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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세대가 더 많이 당했다
30대 A씨는 최근 검사를 사칭한 전화를 받았다. 대포통장 사건에 연루됐다는 것이었다. 사기범은 협조하지 않으면 피의자로 전환될 수 있다며 압박했고, 이어 가족과 지인에게 미안함을 담은 반성문을 쓰라고 요구했다. 실제로는 수사가 아니었지만, A씨는 스스로 무너졌다. 그리고 단 8분 만에, 세 차례에 걸쳐 9,700만 원을 송금했다.1) 2026년 현재에도 일어나는 일이다.

금융사기는 스마트폰에 서툰 노년층의 일이라는 것이 우리의 통념이다. 그런데 토스뱅크에 따르면 2030세대의 금융사기 피해 비중은 2024년 54%에서 2025년 66%로 급증했다. 평균 피해액도 상당하다. 20대와 30대 평균 피해액은 각각 2,800만 원과 4,462만 원에 달했다. 스마트폰을 가장 능숙하게 다루고, 최신 사기 수법에 대한 정보도 가장 많이 접하는 세대가, 가장 크게 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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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안다고 믿는 사람이 당한다
이 역설을 설명하는 심리학 개념이 있다. 낙관 편향(optimism bias)이다. 1980년 심리학자 닐 와인스타인(Neil Weinstein)이 처음 정리한 이 개념은, 나쁜 일은 남에게 일어나고 좋은 일은 자신에게 일어날 것이라 믿는 인간의 보편적인 착각을 가리킨다.2) 사람은 교통사고, 실직, 질병 같은 부정적 사건의 발생 확률을 스스로에게는 낮게 계산하고, 반대로 좋은 일이 일어날 확률은 높게 계산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미국, 영국의 연구진이 함께 참여한 2024년 연구는 이 편향이 사이버 사기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실증했다.3)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금융회사 직원 226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9%가 ‘비현실적 낙관주의자’로 분류됐다. 이들은 ‘보안 사고는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고, 연구팀은 이런 낙관주의자 집단이 평균적인 집단보다 실제 보안 위협에 더 취약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들이 무지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스스로 보안에 밝다고 믿을수록, 위협에 대한 경계는 낮아졌다.

“AI는 속여도 나는 못 속인다”는 착각

이 착각은 AI 시대에 한층 더 위험한 형태로 나타난다. 영국에 본사를 둔 생체인증 보안기업 iProov가 2025년 2월 발표한 조사 결과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4) 영국과 미국 소비자 2,000명에게 진짜 이미지·영상과 AI로 만든 딥페이크를 섞어 보여주고 구별하게 한 결과, 전부 정확히 가려낸 사람은 단 0.1%에 불과했다. 딥페이크임을 미리 알고 찾아보라고 안내받은 상태에서도 이 정도였다. 그런데 정작 참가자의 60% 이상은 정답 여부와 무관하게 자신이 딥페이크를 잘 구별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고, 이 과신은 특히 18~34세 젊은 층에서 두드러졌다. 실력과 확신 사이의 이 거대한 간극, 바로 그 틈에서 사기가 성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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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을 안다고 믿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이 편향은 자녀 세대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부모님은 그런 걸로 안 속으실 거야.’ 자녀들이 흔히 하는 이 생각도 낙관 편향의 또 다른 얼굴이다. 평생을 살아오며 온갖 산전수전을 겪은 부모님이라면 사기쯤은 가볍게 알아챌 거라는 믿음. 그러나 이 믿음은 정작 부모님께 필요한 대화와 장치를 자녀 스스로 미루게 만든다. 확신은 부모님을 지켜주지 못한다. 오히려 확신했기 때문에 아무 대비도 하지 않은 그 자리에, 사기가 가장 먼저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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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이 강할수록, 한 번 더 확인하라
그래서 필요한 것은 역발상의 습관이다. ‘이건 확실히 사기가 아니야’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수록, 그 순간을 오히려 경고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부모님과 미리 이렇게 약속해두면 좋다. 어떤 연락이든 상대가 급하게 돈이나 개인정보를 요구하고, 스스로 ‘이건 진짜인 것 같다’는 확신이 강하게 들 때는, 무조건 지정된 가족 한 명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확인하기로. 확신의 크기와 위험의 크기는 비례한다는 사실을 가족이 함께 기억해두는 것, 그것이 첫 번째 방어선이다.

이 습관은 부모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자녀 세대 역시 자신이 사기를 알아챌 수 있다고 믿는 그 순간에 가장 크게 무너진다는 것을 우리는 앞서 확인했다. 확신이 드는 순간 한 번 더 걸음을 멈추는 습관은, 그래서 온 가족이 함께 지녀야 할 규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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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은 방벽이 아니라 사각지대다
우리는 오랫동안 사기를 무지의 문제로 여겨왔다. 더 많이 알면, 더 안전할 것이라고.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사실은 정반대를 가리킨다. 사기는 무지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은 예외라고 믿는 사람을 정확히 겨냥한다. 스마트폰에 능숙한 20대도, 평생 세상 물정을 익힌 부모님도, ‘나는 안 속는다’는 그 한 문장 앞에서는 똑같이 무방비해진다. 확신은 우리를 지켜주는 방벽이 아니라, 정작 위험이 다가올 때 우리 눈을 가리는 사각지대다. 그러니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내가 속을 리 없다’고 믿는 대신, ‘나도 속을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대비하는 것. 그 작은 태도의 전환이, 확신이 무너뜨리지 못하는 유일한 방어선이 될 것이다.

1) www.fnnews.com/news/202606150700395442
2) vittoriodublinoblog.org/wp-content/uploads/2025/07/weinstein_unrealistic-optimism-about-future-life-events.pdf
3) rke.abertay.ac.uk/ws/portalfiles/portal/83665309/VanDerSchyff_OptimismBias_Published_2024.pdf
4) www.iproov.com/press/study-reveals-deepfake-blindspot-detect-ai-generated-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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