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버킷리스트 세 가지

나의 버킷리스트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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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출근길 반대편 차선은 휴가 가는 차량으로 가득하다. 나도 서서히 휴가 준비를 해야 하나? 내일 쉬는 날인데 저녁에 친구 녀석이나 불러서 적당한 안주와 함께 소소한 이야기나 나누어야겠다. 뭐 이런 생각으로 회사로 들어오는데 방송과기술 편집위원 선배가 웃으며 날 맞이해 주었다. 서론도 그리 길지도 않다. 글 하나 써 달라는 것이다. 야마(뉴스에서 제목을 지칭하는 은어)는 죽기 전에 이루고 싶었던 일들을 글로 표현해 보라는 것이다.

‘어? 부끄럽지만 사실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늘 돌아가는 쳇바퀴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느낌이었다.

남들은 이러한 주제에 어떤 생각들이 있을까? 인터넷을 헤매고 있는 차에 우연히 20대 중반에 암 진단을 받은 후 자신의 83가지 버킷리스트를 작성해서 하나씩 실현해 나가고 있는 김수영 씨의 강연을 보게 되었다. 그는 환경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생각과 함께 이것을 꼭 글로써 남겨보라고 조언하고 있었다. 글로 적는다는 것은 자신과의 인생에 계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실천하라고 말한다. 김수영 씨의 버킷리스트엔 자신이 살아오면서 해보지 못했던 일들에 대한 후회를 최소화하고 싶은 간절한 바람의 목록들을 담고 있었다.

   
 

그래 일단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안 해보면 나중에 후회가 더 클지 우선순위 위주로 정리해보자. 그리고 하나둘씩 써 내려가기 시작한 리스트는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많았다. 적어 놓은 목록들을 하나둘씩 읽어 내려가다 보니 남은 평생 한 번씩이라도 해보기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나의 버킷리스트의 첫 목록은 러시아 횡단철도 여행을 한 달쯤 해보는 것이다. 만일 대학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제일 먼저 한 달 아니 두 달쯤 배낭여행을 떠나보고 싶다. 졸업 후 10여 년이 지난 지금 배낭여행을 못 해본 게 이렇게 큰 후회로 남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 맞아 이런 거 생각했었지. 저런 거 하고 싶어 했었지.’ 그 외의 생각과 바람들이 이면지 위에 저 깊은 곳에 있었던 옛날 기억을 떠올리면서 낙서 비슷하게 써 내려가졌다.

낙서의 첫 줄에는
여행 그리고 느낌을 기록하다.
학교 다닐 때부터 지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도 잡생각을 없애는 방법 중에 구글 지도를 펼쳐놓고 가상의 여행을 해 보곤 하는데 시간과 여건을 핑계 삼아 나름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방법이다. (마치 외제 차 검색하고 구경하듯이) 장기 여행에 대한 생각만 몇 년째이다. 어느새 아이들도 대화가 가능한 나이가 되어버려 좋은 기회가 오더라도 큰 애 정도는 데리고 간다고 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어디 가고 싶은데? 라도 물어오면 천천히 그리고 느낌을 기록할 수 있는 여행이 되었으면 한다. 유라시아 횡단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뭐 한 번쯤은 다들 서울역에서 광활한 대륙으로 기차여행을 상상해 보았으리라 생각이 드는데 현실은 파주 도라산역에서 막혀 있으니 안타까운 마음이다. 하지만 속초항에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20여만 원에 대륙을 통과하는 시발역으로 떠나는 배가 있으니 배로 시작하는 유럽여행이 가능은 하다. 나름대로 사진에 대한 감각도 있다고 생각하니 환상적인 자연과 사람들의 생활을 내 생각과 잘 버무리면 여행 동안의 시간은 잘 담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한국~러시아~몽골~터키~불가리아~세르비아~헝가리~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오스트리아~슬로바키아~체코~독일~이탈리아~프랑스~영국 뭐 이러한 나라들은 기차로 버스로 이동이 가능하다고 하니 이 글을 보시는 분 중에 시간이 허락되면 속초항으로 달려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시작점인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나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되리라 생각이 든다.
태어나서, 내가 태어난 좁은 나라 외에 너무나도 다양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있는데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해보고 죽는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억울한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그래서 리스트의 첫 줄에는 자유로움과 함께하는 여행이라는 글이 먼저 나온 듯하고 체념보다는 꼭 실천으로 옮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구글 지도를 펼쳤을 때는 성취감이 더해진 다른 느낌을 받고 싶다. 그 옆엔 “눈앞에 펼쳐지는 대자연에 넋을 잃었다”, “그들의 생존을 위한 생활 속을 함께하면서 나태해진 나를 돌이켜 보게 되었다” 등의 여행 때의 내 느낌을 가득 담은 책 한 권과 함께…

   
 

낙서의 두 번째 줄에는
홍대 길거리 지금 출발하려하니 기다려봐~

초등학교 때 친구들은 산수 국어 학원을 많이 다녔을 때 난 부모님이 피아노 학원을 오래 보내주셨다. (그 덕에 부조에서 음향을 하고 있을 수도…) 지금이야 별 이야깃거리도 아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남자로서 피아노로 동요를 수십 곡씩 친다는 것은 나만의 특기로 자리 잡기에 충분하였다. 음악 시간에 선생님 대신에 연주도 하고 그로 인해 여학생들에게도 한 인기 했었는데~~~ 늘 친구들한테는 “나한테 지구력만 더 있었어도 날 만나려면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에 와야 만날 수 있었어”라고 농담도 던지곤 했다.

   
 

며칠 전엔 집 앞 백화점에서 기타를 세일한다는 전단이 붙여져 있었다. 꽤 이름 있는 기타들이 10만 원대에 주인을 기다린다는 내용이다. 예전부터 기타를 배우고 친구들한테 검증받고 작은 합주 공연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번 글을 계기로 다시 악보를 펼쳐서 나의 음악에 대한 옛 추억을 더듬어가면서 즐거움을 연습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친김에 홍대 앞 길거리 공연을 목표로 실력을 다듬어 볼 생각이다. 유튜브에 기타 연주곡을 틀어놓고 글을 쓰는 중인데 역시 행복함이 전해오는 듯하다. ‘안 되겠다 이 취미는 당장 해야겠다.’ 혼자서는 용기가 나지 않으면 방송 대기시간에 별 취미 없이 영화만 검색하고 있는 후배 녀석을 끌어들여서라도.

낙서의 세 번째 줄에는
제일 자신 없는 요리를 요리해봐?

오늘 오후에 전 직장 선배한테 전화가 왔다. 꽤 연락도 자주 하는 편이었는데 갑자기 요리책을 한 권 냈다고 한다. 우와~ 엔지니어가 웬 요리책을 내셨어요? 이후에 새로운 꿈도 있지만 지금은 딸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어서 몇 년에 걸쳐 조금씩 배운 것을 사진작가와 함께 책을 냈다는 것이다. 요즘도 시간이 나면 후속책을 준비한다고 이름을 들어본 듯한 요리사와 같이 요리도 만들어 보고 멀리 부산, 진해, 진도 등지에서 특산물 요리사를 찾아가 책도 선물하고 요리도 먹어보곤 한다고 한다. 요리뿐만 아니라 자신의 요리와 함께할 그릇과 도구인 칼을 만드는 일에도 도전을 같이 하고 있단다.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다.
그에 반에 우리 집에 있는 꼬맹이들은 불행히도 요리에 취미가 없는 아빠를 만나서 바쁜 엄마를 대신하여 내가 준비하는 저녁을 많이 먹는 편인데 거의 일관되게 볶음밥을 먹는 편이다. 뭐 기분 좋으면 카레밥 정도? 사실 재료를 사서 썰어 만들어 먹는다는 것을 시도해 본 적이 없어서 앞선 선배의 ‘취미를 넘는 요리 열정’에 한 편으로 반성도 해 본다.

   
 

생각해보면 전혀 요리를 안 해본 건 아닌데~ 군대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요즘 군대사고 이야기가 한참 이슈인데 나 역시 군기가 제법 있는 의경생활(아마 아시는 분들은 아실 듯)을 하였는데 도저히 힘도 들고 이 지옥과도 같은 자대생활에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는 찰나에 요리를 잘하면 편안한 외곽 초소 생활을 할 수 있다는(졸병이 직접 요리를 해야 함)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된다. 외근 때마다 인심 좋아 보이는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된장국, 미역국 레시피를 필두로 계란말이, 마른반찬 등 입으로 전해 들은 노하우를 100% 습득하여 요리에 일가견이 있다는 거짓말과 함께 외곽 초소 근무를 아무 문제 없이 해낸 경험도 있으니 뭐 마음만 먹으면 이 정도의 도전은 쉽게 해결될 듯하다. 나와 우리 아내는 빵을 좋아하니 케이크에 도전하여 다가오는 아내 생일 때 올려보는 것도 좋을 듯한 데 만들려면 성능 좋은 오븐부터 있어야 되는 건가? 여기서부터 벌써 브레이크 걸리면 안 되는데…..
 
다시 한 번 ‘죽기 전에 뭐 하고 싶은데?’
사는 것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이상, 우리는 삶을 살아간다. 이미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듯하다. 자본의 틀 안에서 시간까지 허락된다고 가정하면 실천할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이 있다. 만약에 나와 같은 사람이 지금 당장에 방송엔지니어 직업을 놓고 수공예 통나무 집 짓기 기술을 배운다든가, 막연히 외국생활을 하고 싶다던가, 세계 일주를 배낭 하나에 의존하고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마음먹고 죽기 살기로 한다면 죽지는 않을 일들이 대부분이다.

아무튼, 이 글을 써 내려가면서 죽으면 하지 못해서 아까운 일들이 어떤 것이 있나 생각해보게 되었다. 앞서 말한 러시아 횡단 열차 여행, 요리대회 출전해보기, 길거리에서 공연해보기 그 외에도 이 글에 첫 시작인 이면지 메모에는 나의 경험을 잘 정리하여 대학교에서 강연하기, 아이와 함께 자전거로 전국 일주하기, 세상에 있는 많은 언어 배우기, 아파트 자투리땅에 꽃과 나무로 정원 가꾸기, 아프리카나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힘이 되어보기 등 생각할수록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이 많이 나열되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해서 잘못되었던 일들”보다는 “하지 못한 일들”을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선택한 일에 대한 후회보다는 선택하지 못한 일들에 대한 후회를 더 크게 느낀다는 것이다. 특히, 사람들은 단기적으로는 했던 일들을 후회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못해본 일들에 대해선 더 크게 후회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후회가 되는 행위에 인한 괴로움이 실천하지 않아 후회로 남은 괴로움보다 더 빨리 줄어들기 때문이란다.
물론 사람마다 이 조건이 맞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버킷리스트를 세워놓고 몇 년 후 다시 돌이켜 보았을 때 ‘아~ 내가 이런 계획이 있었는데’. 또 후회하는 것보단 하고 싶은 일들을 잘 관리하고 다독이면서 실현할 수 있도록 의지를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위의 심리학자의 말처럼 인생에서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살면서 한 일들이 아니라, 하지 않았던 일 중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현실에 치우쳐서 하고 싶은 일들보단 해야 하는 일들만 하고 살지는 않았나.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힘든 일은 많겠지만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세워보면서 목표를 향해 열정을 다 하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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