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방송 플랫폼 정책에 대한 고언(苦言)

지상파방송 플랫폼 정책에 대한 고언(苦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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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해는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방송을 둘러싼 수많은 정책이 쏟아졌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된 것은 없다. 작년 초 새 정부의 기치인 창조경제를 위해 독임제인 미래부가 신설되면서 많은 방송정책이 독단적으로 결정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었다. 방송주파수를 포함한 지상파방송의 주요 정책은 합의제 구조인 방통위에 남아 있어 미래부와 방통위의 상호견제와 협력을 통해 정책이 결정되는 구조가 되어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다.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은 유료방송 중심의 정책이다
지난해 12월 정부(미래부, 방통위, 문체부)는 창조경제를 위해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그동안 지상파방송과 유료방송 사이의 이해관계가 있는 모든 정책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계획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공적책무를 띠고 있는 지상파방송도 산업적 관점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정책을 세웠다는 것이다. 지상파방송과 유료방송은 설립목적과 그 역할에 있어서도 확연히 다르다. 지상파방송이 공익성, 공공성의 무료 보편적 성격을 띠고 있는 반면, 유료방송은 가입자 기반의 특수성을 띠고 있다. 이 계획에 포함된 지상파 디지털 전송방식인 8VSB를 케이블에 허용하는 것과 차세대 방송인 UHD 로드맵에 지상파만 배제된 것은 대표적인 친 유료방송정책이라 할 수 있다.
 
케이블에 8VSB를 허용하는 것은 누구다 다 아는 종편 특혜다. 종편 사업자들이 비밀담합 TF까지 운영하며 지속적으로 8VSB의 확대를 도모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결국 종편의 요구에 따라 미래부가 무리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차세대 방송인 UHD 로드맵에는 케이블, 위성방송에 대한 계획만 나와 있고 정작 국민이 무료로 볼 수 있는 지상파방송은 아예 배제되어 있다. 명목상으로는 미래부와 방통위 주도의 주파수연구반 논의 결과에 따라 포함시킨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미래부가 700MHz 대역 주파수 전체를 통신사에 매각하려는 의도를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이렇게 차세대 방송 로드맵에 지상파가 배제되어 있는 것은 정부가 직접 나서서 차세대 방송은 유료방송에 가입해서 돈을 내고 보라는 정책을 세우고 있지 않나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지상파방송은 공영방송은 물론이고 민영방송도 공공재인 주파수를 통해 방송을 송출하고 있기 때문에 공공성과 공익성을 가져야 하는 공적책무를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파 차세대 방송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700MHz 주파수를 산업논리로만 접근하는 정부 방송정책에는 문제가 있다.

지상파방송은 위기다
방송은 크게 콘텐츠사업과 플랫폼사업의 두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콘텐츠사업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으로 지상파, 종편, CJ E&M 등을 들 수 있고, 플랫폼사업은 제작된 프로그램을 시․청취자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지상파, 케이블, IPTV, 위성방송 등을 들 수 있다. 지상파방송은 공적책무의 특성상 두 개의 영역의 사업자 지위를 가지고 있다.
지상파방송도 과거 신문이 그랬던 것처럼 영향력이 점점 축소되고 있다. 인터넷을 포함한 다양한 미디어의 발달로 신문, 방송이 아니더라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재작년 말부터 지상파는 아날로그 TV방송을 종료하고 디지털 TV방송만 송출하고 있다. 방송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면서 방송사와 시청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디지털 전환 이후 시청자 복지가 증가한 외국의 경우와 국내 상황을 비교했을 때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지상파는 디지털 전환 이후 고품질, 다채널을 제공하였다. 이는 시청자복지를 증가시키고 지상파방송을 안테나로 직접 수신하는 가구 수를 증가시킨 반면, 국내는 오히려 감소하였다. 그 원인은 시청자복지를 생각하지 않고 다채널을 허용하지 않은 정부정책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TV방송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지상파 방송사는 이동성, 난시청 해소, 주파수 문제 등을 고려하여 유럽식 전송방송(DVB-T) 채택을 요구하였으나, 정부는 북미 TV수상기 시장을 고려하여 미국식 전송방송(ATSC)을 채택하였다. 그 결과 지상파는 정부주도의 무리한 디지털 전환일정으로 인해 수천억 원대의 차입금을 떠안게 되었고, 지상파방송을 직접 수신하는 가구 수가 급락하여 매체 경쟁력이 약화되었다. 시․청자입장에서는 화질만 좋아졌을 뿐 디지털 전환에 따른 별다른 혜택을 누리고 있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상파방송도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지상파방송의 매체 경쟁력 약화에는 정부 방송정책의 잘못뿐만 아니라 방송사 내부의 문제도 있다. 문제점으로 다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콘텐츠 생산 중심 위주의 정책을 펴왔다. 방송은 콘텐츠가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에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지상파방송은 콘텐츠에 못지않게 자체 유통망인 플랫폼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왔다. 또한 지상파는 방송 전파 커버리지에는 관심은 있었으나, 수신환경 부문에서는 다소 무관심했다. 현재 그 틈새를 유료방송이 메꾸고 있다. 아무리 훌륭한 플랫폼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사용자가 외면해 버리면 소용이 없다. 국내 지상파의 낮은 직접 수신 가구 수는 지상파의 역할 축소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 존립문제를 걱정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둘째, 난시청 해소에 적극적이지 못했다. 난시청 해소는 모든 지상파 방송사의 공적책무다. 지상파 방송사 중 KBS와 EBS만 전국적으로 방송 전파 커버러지가 약 97%에 해당한다. 즉 전국 어디서든지 안테나만 있으면 유료방송에 가입하지 않고도 KBS와 EBS 시청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KBS와 EBS를 제외한 나머지 방송사들의 방송 커버러지는 수도권과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중소도시로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모든 지상파가 난시청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700MHz 대역 주파수 전체로도 부족한 실정이다. 다양한 매체 접근이 어려웠던 예전에는 지상파가 정보 전달의 우월적 지위에서 사업자 중심의 정책을 펴도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시청자는 지상파를 지상파 플랫폼을 포함한 다양한 플랫폼으로 시청이 가능하기 때문에, 지상파는 시청자 입장에서 난시청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지상파는 지금 위기다. 지상파의 현재의 위기는 정부의 잘못된 방송정책과 지상파의 안일한 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지상파는 플랫폼의 중요성을 느껴 차세대 방송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정부도 차세대 방송에서 지상파 플랫폼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 올 한 해도 방송정책의 격변의 시대가 예상된다. 지상파방송은 현재의 위기를 통해 자사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무엇이 시청자복지를 위한 것이고 공적책무인가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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