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연극하기: 용어 접하기

취미로 연극하기: 용어 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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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 영국 런던 출신의 찰리 채플린. 출연 영화 (1918)의 한 장면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무성영화 속 우스꽝스러운 행동과 표정으로 시대를 풍자하는 작품에 등장한 찰리 채플린. 트레이드마크인 콧수염과 뒤뚱거리는 걸음이 인상적인 영국 출신의 희극배우이자 영화감독으로 활동한 그가 남긴 명언이다. 어찌 보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과 일맥상통하지만 글쓴이는 비극과 희극에 인생을 비유한 찰리 채플린의 말에 감탄하며 더욱 크게 공감하게 된다. 인생의 무대 위에 비극과 희극을 오가는 연기자, 바로 우리다.

요리보고 조리보는 희곡의 재미

비극과 희극은 이렇게 일상에서 사용해도 자연스럽게 쓰는 단어지만 사실 연극 용어에서 유래됐다. 바로 ‘희곡’의 장르의 구분에서 쓰는 용어다. 희곡은 연극에서의 ‘대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본과의 차이점은, 희곡은 본래 연기를 위해 쓰였지만 그 자체로도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구분되지만 대본은 오로지 연기자의 육성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점이다. 희곡은 대본과 마찬가지로 등장인물들의 대사로 책이 쓰인 형태를 하고 있는데 문학으로서 처음 접하게 되면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보통 책은 시점이 정해져 있어 등장인물 중 누군가에게 빙의되거나 전지적(全知的) 작가 시점인 경우 독자가 신(神)적 존재로 ‘신분 상승’되어 장면 장면을 조망하며 읽어 내려가는 것이 습관적이다. 하지만 희곡은 각 등장인물이 자신의 할 말만 하기 때문에 특별한 지문이 없는 한 독자가 대화들을 읽어가며 이야기를 파악해야 한다. 조금 더 집중이 필요하다고 할까. 글쓴이는 이 ‘희곡’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웃지 못할 기억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중학생 시절 국어 시간의 과제 중 ‘희곡 읽기’를 위해 처음 희곡 책을 사 펼쳤을 때의 막막한 기억. ‘이거 책이 잘못된 건가?’ 그리고 다른 하나는 대학생이 되어 영문학 시간에 접한 안톤 체호프의 「벚꽃동산」 희곡이다. 중학생 때의 막막함과는 또 다른 막막함이 밀려왔다. ‘이거 수강신청 하지 말걸!’

삼천포에서 빠져나와, 과제의 압박에서 벗어나 읽는 희곡은 ‘빈틈투성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독자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이야기다. 인물 간의 대화, 그리고 약간의 지문이 제시되면 독자는 그것을 바탕으로 장면과 등장인물의 생김새, 행동까지 시각적인 모든 것을 상상하며 머릿속으로 직접 연극 한 편을 꾸미는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창의 활동을 유도하는 문화생활인가.

스스로 모든 것을 상상하기 부담스럽다면 ‘희곡 낭독 공연’이라는 대책도 있다. ‘낭독’이라는 단어가 품는 묘한 지루함 때문에 알기도 전에 지루한 감이 들지 않기를 바라며. 희곡 낭독 공연은 말 그대로 대본을 읽는 것을 무대화하는 것이다. 마치 라디오 드라마를 직접 목격하는 기분이 드는 공연이다. 하지만 이런 낭독 공연도 연출이 있어 그 재미를 더해준다. 무대 위 연기자들이 마이크 앞에서 대사만 읊는 것이 아니라 그에 어울리는 표정, 행동을 자연스레 덧붙여 보는 이들의 시각적․청각적 몰입도를 높인다. 고군분투하는 효과음 제작 과정도 볼 수 있기도 하다. 무대 조명이나 장치는 단조로워 관객의 긴장도를 낮춘다. 관객이 배우에게 집중하기 좋기 때문에 연기하는 배우는 어느 무대보다도 더 긴장은 되겠지만 말이다.


   
▲ 그림 2. 지난해 남산예술센터와 대학로에서 열린 낭독 공연 포스터들. 보는 즐거움만큼 듣는 즐거움이 크다는 것을 아는 관객들이 많아지고 있다.



앞에서 살짝 언급했듯 희곡을 바탕으로 배우들을 통해 무대화시키는 역할은 연출이 담당한다. TV드라마와 같은 역할이다. 대사들을 어떻게 공연예술로 표현할 것인가는 연출의 상상력에서 나오는데 여기에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 있다. 드라마투르그 또는 드라마터그(dramaturg)라고 하는 사람은 연출과 함께 전체 극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다. 희곡의 창작 또는 극의 분석과 해석단계에서 조언가로 활약하는 것을 시작으로 제작과 캐스팅, 리허설과 공연까지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전체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연극 비평가나 평론가가 특정 작품의 드라마투르그로 활동하며 연극의 제작과 상연까지의 과정에서 연출과의 끊임없는 상의를 통해 ‘극적’ 도움을 주게 된다.

연극의 막이 오르기까지

무대에 오를 것, 즉 희곡이 완성되었다면 이것을 무대로 옮기기 위해 일어나는 일들을 살짝 공개하고자 한다. 이 단계를 알 수 있다는 것은 극장에 근무하는 사람으로서 ‘특권’으로 꼽을 만큼 특별하고 비밀스러운 과정이다. 공연이 무대에 올려져 관객에게 선보이기까지의 과정을 접할 수 있는 첫 관객으로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 표 1. 희곡 완성 후 연극이 만들어지는 과정



작품과 연출자, 연기자 등 스태프와 배우가 정해졌다면 이들이 모여 가장 먼저 하는 공연을 위한 작업은 미팅이다. 결혼을 앞둔 상견례처럼 설렘과 긴장이 혼합된 자리에 공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인사하는 시간이다. 공연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공유하는 순서 이후는 리딩(reading) 연습이 시작된다. 이 단계는 TV 연예프로그램을 통해 방송되는 드라마 준비 장면과 같아서 독자들도 낯설지 않을 거라 생각된다. 각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모여 앉아 순서대로 각자의 대본을 읽으며 감정 연기를 한다. 그다음은 액팅(acting) 연습이다. 무대라는 물리적으로 한정된 공간에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무대 위 올려질 소품과 무대 경계를 계획하여 동선을 익히게 된다. 바닥에는 테이프로 무대 경계와 배우들의 주요 지점을 표시하여 배우들의 등장, 퇴장까지 연습한다.

 

대사와 동선을 모두 익히면 ‘실전 같은 연습’의 순서다. 이를 ‘런 스루(run through)라고 한다. 이전까지의 연습에서는 배우들이 대본을 들고 장면 장면을 연기하고 연출은 그때마다 디렉션(direction : 지시)을 주어 배우들의 감정 표현이나 동선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수정했다면 이러한 부분 수정을 모두 마친 후 처음부터 끝까지 끊어짐 없이 연기를 하게 된다. 배우들도 감정의 흐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나가기 때문에 연기의 면에서는 대부분 완성된 단계라 볼 수 있다. 물론 추가 수정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연습공간은 이제 답답한 연습실을 벗어나 극장으로 들어온다. 공연 전에는 공연 준비기간이 필수인데 이 시기는 셋업(set up)도 포함되어 공연에 필요한 무대 장식과 소품이 꾸며진다. 무대가 마련되고 배우와 연기가 마련되면 기술적인 부분이 준비된다. 이때는 장면에 맞는 무대 조명과 음향이 설정되는 작업이라 테크니컬 리허설(technical rehearsal) 또는 무대전환 리허설이라 한다.

여기까지 준비가 끝나면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지막 연습인 드레스 리허설(dress rehearsal)이 남았다. 배우들은 의상, 분장까지 모두 갖추어 마치 본 공연을 하는 듯이 무대에서 연습을 한다. 테크니컬 리허설도 마쳤기 때문에 객석에 관객만 없을 뿐 완벽한 공연이라 할 수 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면 프레스 콜(press call)을 연다. 언론 보도를 위해 각 매체의 기자를 초청해 미리 선보이는 자리다. 특성에 따라 생략되는 경우도 있지만 큰 카메라가 세워지고 취재진의 움직임, 그리고 셔터 소음 등의 방해 요인 때문에 정식 공연 시작에 앞서 낮 시간에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시연하지 않고 출연진과 주요 스태프를 향한 질의 응답시간만 마련된다면 연극에서의 프레스 콜은 주요 장면, 또는 전막을 공연하여 기자의 내용 취재를 돕는다. 연극 공연의 특성상 공연장에 오지 않으면 TV드라마와 같이 손쉽게 접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전 정보의 전달이 특히 중요하기 때문에 연극 제작자들은 프레스 콜을 꼭 개최하려 하는 것도 당연하다. 무대에 선 배우들은 물론이려니와 프레스 콜을 이를 지켜보는 공연 관계자도 다른 과정보다 이 단계가 가장 긴장된다. 정확한 보도를 위해 공연을 관람하는 기자에게 객관적인 시선에서의 관람평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관계자는 공연의 진행 내내 가까이 접하고 손길이 많이 닿았기에 ‘내 자식’ 같은 느낌이라 어느새 주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마련이다. 이날 기자의 평으로 이 공연이 대중의 관심을 끌지 그렇지 못할지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한다.

정식 오픈을 앞두고 일정기간 동안 소수의 관객에게 공연을 선보이는 프리뷰(preview)도 있다. 대중의 입소문을 이용하는 마케팅 방법이기도 하겠지만 제작자들도 관객의 반응을 점쳐볼 수 있는 시간이며, 관객들은 프리뷰 공연으로 정가보다 저렴한 특가로 입장권을 책정하기도 해 공연을 미리 관람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러한 몇 가지 단계를 거쳐 공연 하나가 무대에 오른다. 보통의 연극 공연은 공연일이 일주일 이상 진행되는데, 종료일을 명시하지 않은 공연들도 있다. 오픈 런(open run)이란 단어는 이러한 공연에 쓴다.

길고도 험한 터널을 지나 공연 시작이라는 종착지에 도달한다. 이런 과정들을 겪고 공연장에 올라가고 있는 수많은 연극들. 글쓴이는 매번 공연 관람이 끝나면 입사 초에 공연 담당 선배가 한 말이 떠오른다. “기획한 공연이 끝나면 내 몸에서 뭔가 하나가 쑥 빠지는 느낌이야. 개운하면서도 허전한 기분. 이 허전함을 메우기 위해, 그리고 그 개운함을 다시 느끼기 위해 이렇게 힘든 과정을 계속 반복하게 되나 봐.” 누구든 자신의 열정과 정렬을 바친 일이 끝나면 이와 같이 느낄 것이다. 관객들은 몇십 분으로 완성된 결과물만 보고 극장을 나서겠지만, 그 뒤에 보이지 않는 노력으로 쌓아온 시간을 한 번쯤 떠올려본다면 공연의 감동이 조금 더 진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2월의 연극 소개」

   
 



How old are you?

<맨 프럼 어스>

작년 한 해 우리나라를 넘어 중국 대륙의 ‘어마무시한’ 인기를 모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의 남자 주인공과 같은 사람이 여기 또 있다. 동명의 영화 <맨 프럼 어스(Man From Earth)>를 무대로 옮긴 이 작품은 1만 4천 년 전부터 현재까지 방부제 외모로 늙지 않고 살아온 존 올드맨을 주인공으로 한다. 배경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대학 교수로 근무하던 존 올드맨의 송별회 자리. 동료 교수들과의 대화 속에 밝혀지는 그의 정체! 영화를 본 사람들도 연극 무대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명연기로 새롭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2014.11.7(금) ~ 2015.2.22(일)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

연출 : 최용훈

각색 : 배삼식

출연 : 문종원, 박해수, 여현수, 김재건, 최용민, 이대연, 이원종, 손종학, 서이숙,

김효숙, 이주화 외

문의 : 02-744-7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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