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함에 이르는 노트의 비밀

탁월함에 이르는 노트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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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보고 듣고 느끼며 이리저리 생각을 하고, 그 반응 속도는 실로 빠르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겠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에 파노라마처럼 지나간 일들이 스쳐 지나가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우리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빠른 지각과 사유능력을 갖춘 인간이 글을 쓴다는 행동은 실로 느려터지고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속사 총처럼 말을 쏟아내는 개그맨들을 보면 글을 쓴다는 것의 비효율성은 실로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기록을 한다는 것은 2차원의 종이에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글자를 쓰는 것이므로 0차원과 1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된다. 4차원의 세계가 1차원 이하로 축약되는 과정이 즐거울 수만은 없다. 자유로운 생각이 단어와 문법으로 고체화되어야 한다. 그 과정도 종이에 연필이나 펜과 같은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 수메르의 사람들은 진흙으로 만든 흑판에 뾰족한 도구로 흔적을 냈다. 그림을 그리는 것과도 사뭇 다른 글쓰기는 나름대로 모든 인간들에게 오래도록 혈관 속에 흘러온 장인 기질을 일깨우는 것이 사실이다.

 

기록을 간직하는 매체인 종이는 이제 디지털 시대에 소멸할 것으로 보였지만 날로 그 소비를 늘리고 있다. 누가 말했던가. 인류의 진보는 어떤 소리에 의해 탄생했는데, 그 소리는 바로 종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라는 것이다. 종이가 흔한 오늘날에도 종이를 귀히 여기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 많다. 파지 한 장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뒷면을 재활용하기도 한다. 종이는 비록 2차원의 단순한 면에 불과하지만, 그곳에 글자가 쓰일 때, 그 종이는 우리의 생각을 이끄는 묘한 마법의 지도가 되고 만다. 종이에 기록된 글은 순간적으로 우리의 머리에 온갖 연관된 생각과 느낌을 피어 올리고 마침내 우리는 한없이 종이를 바라보며 울고 웃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문화인류학자가 원시적 삶을 사는 부족의 마을에 가서 그들을 관찰했다고 한다. 원시부족을 관찰하고는 그 사실을 종이에 기록하고, 관련 자료를 읽는 그에게 부족의 추장은 그를 정신병자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자연에 나가서 활보를 하고 친구들하고 어울려 놀지 않고,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무엇인가를 펴 놓고 쓰고 읽고 있는 그의 정신에 어떤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했다. 사실 글을 쓰거나 글을 읽거나 하는 모습은 누구나 대략 비슷하다. 그리고 표정도 대략 비슷하다. 이렇게 종이와 인간 사이에 몇 시간씩 붙어있게 만드는 기록의 힘은 참으로 놀랍다. 그렇기에 몇 시간을 들여서 한 장의 종이를 글자로 채우는 일에 사람들이 골몰하는 것이다.

 

   
 

길고도 지루한 종이에 글씨 채우기 과정에는 당연히 글씨를 나타낼 잉크와 펜이 필수적이다. 먹과 붓은 동양인들이 오랫동안 써온 재료이다. 연필도 큰 몫을 한다. 연필의 효용은 지우개로 지울 수 있다는 것인데, 어떤 이는 연필을 놓고 연필의 미덕을 예찬하기도 한다. 연필의 육각형 모서리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연필심을 들어내기 위해 몸을 깎아내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연필심의 진하기를 나타내는 B를 놓고 사람들을 구분하기도 한다. 4B는 화가를 상징하고, 2B는 건축가를 상징한다. HB는 공학자를 상징한다. 비행기 중에 2B는 전설적인 폭격기인데 같은 B이지만 의미는 사뭇 다르다.

연필이나 먹은 결국 탄소라는 원소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보존성이 탁월하다. 그러나 잉크는 화학물질로 탄소하지 못한다. 오징어나 문어의 먹물을 사용했던 천연 잉크는 후일 점차 인공 화합물로 바뀌고 색깔도 다양해 졌지만, 이 잉크를 담는 펜은 새의 깃털에서 철펜으로 그리고 만년필에 이르는 긴 진화의 과정을 겪었다.

 

“종이는 비록 2차원의 단순한 면에 불과하지만, 그곳에 글자가 쓰일 때, 그 종이는 우리의 생각을 이끄는 묘한 마법의 지도가 되고 만다.”

 

요즘 남자들 사이에 만년필 붐이 일고 있는 것도 재미난 현상 중의 하나다. 어떤 이는 만년필에 인문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감탄하기도 한다. 만년필을 쓸 때 펜촉을 좀 비딱하게 기울여 써야 하는데, 이것이 세상을 약간 비딱하게 보며 비판하는 인문적 정신이라고 강변을 하기도 하는데 설득력은 그다지 크지 않다. 만년필은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중학생이 된 자녀에게 주었던 최고의 선물이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차이를 가르던 필기구는 연필과 만년필만큼 생각의 수준을 달리하는 것으로 우리의 추억 속에 자리하고 있다. 언제인가 오바마 대통령이 사인을 하는 자리에 몽블랑 만년필을 여러 자루 준비하고는 자신의 이름 철자를 한자 쓰고는 바로 다른 사람에게 그 만년필을 선물하는 식으로 여러 자루를 한 번씩 쓰고 선물하던 모습이 기억에 새롭다. 아마 가장 호기 어린 선물 증정 방법이 아닐까 싶다.

 

종이와 필기구는 우리의 생각을 끌어내서 정리하여 마침내 일차원의 선과 영차원의 점으로 형상화한다. 우리는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버리고 버려야 비로소 글자를 종이에 기록하게 된다. 이 기록의 과정은 누에고치에서 비단실을 한 올 끌어내서 풀어내는 것과 같다. 그래서 실잣기와 글짓기가 유사하다. 이 선형성은 흐트러진 생각을 풀어내서 정현하게 한다.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것, 이 과정은 마음의 치유 과정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간질환자이기도 했지만 그의 머릿속에 너무나 많은 생각이 동시적으로 떠올라 미칠 것 같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글을 썼는데, 글로 머릿속의 생각을 쓰고 나면 머리 한구석이 텅 비면서 편안해 졌다고 한다. 그가 쓴 수많은 소설들은 대부분 잠잘 때 베개로 쓰면 좋을 만큼 두툼한데, 그런 긴 글은 그의 정신적 안정을 유지하는 필수품이었던 것이다.

철학자 니체는 지독한 근시와 약골 체질이었지만 그의 정신만은 탁월해서 20대에 독일 대학의 정교수가 되었다. 그는 지독한 근시로 이 세상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종이를 쳐다봐야 했다. 그는 종이 냄새와 잉크냄새를 가장 민감하게 인식한 사람일 것이다. 그런 신체적 악조건을 딛고 그는 끝없이 글을 썼다. 오늘 매우 유명한 ‘짜라투수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은 그러나 불행하게도 당시 열 몇 권만 팔렸는데, 그것도 그를 불쌍히 생각한 그의 모친이 구매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책이 윤전기에서 이미 사망했다고 했다고 하는데, 그 이후실성을 한 채로 몇 년을 더 살다 생을 마감했다.

 

뉴턴은 어떠한가? 그는 한없이 노트에 글을 써댔다. 그는 밥 먹는 것도 잊고, 잠자는 것도 잊고 오로지 자신의 머릿속에 피어오르는 생각을 잡아내기 위해 노트를 했다. 구의 노트는 사과 궤짝으로 몇 개가 될 정도로 많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연구한 많은 연구가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죽은 후 몇 백 년 후에 이를 개봉할 것을 후견인들에 요청했는데, 그 이유는 자신의 노트가 공개되면 아마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무덤을 파헤쳐 유골을 화형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토록 위험한 사상을 노트에 기록하여 물증을 남긴 그의 기록 집착증은 실로 대단하다. 그는 어릴 적 모친에게 버림받은 트라우마를 노트의 기록으로 치유했던 것이다.

 

기록에는 분명 심리학적 요소가 있다. 기록을 전혀 못 하는 순간도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블록 현상이라고 부른다. 이 현상이 나타나면 한자도 쓰지 못하는 것이다. THE라는 글자를 쓰고 나면 더 이상 아무 글도 쓰지 못하는 작가의 고통스런 하루하루를 묘사한 영화가 있다. 우리도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뉴턴같이 한없이 기록하는 기록의 고아적 집착 상태가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하이포그라피아 상태라고 부른다. 쉼 없이 글을 써 대는 것, 그래서 황홀한 정신병이라고 칭송해 마지않는 이 상태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상태이지만 위험한 것은 사실이다. 아이를 유산하고 정신적 충격에 헤매던 하버드 심리학과 교수가 어느 날 아무것도 안 하고 벽이고 창문이고 온갖 곳에 글을 쓰던 자신을 떠올리며 그 상태를 묘사한 대목에서 우리는 글쓰기가 분명 힐링의 힘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노트와 필기구라는 마음의 힐링 도구를 누구나 갖고 있다. 이 가을 번잡한 일상과 정밀한 기계의 논리에서 마음을 다잡기도 하고 다 풀어내기도 하는 기록하기라는 차원 낮추기의 실천은 우리의 삶의 차원을 무한히 높일 것이다.

 

< VOL.203 방송과기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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