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플랫폼 속 레트로 현상과 지상파 콘텐츠

인터넷 플랫폼 속 레트로 현상과 지상파 콘텐츠

지난 수십 년간 미디어는 다양한 콘텐츠에 사회적 가치관과 풍조를 담아내어 대중에게 전달해왔다. 미디어 콘텐츠는 시대적 관점에 따라 평가는 서로 달랐지만 다수가 함께 향유하고, 시대를 대표할 수 있었던 대중문화를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미디어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진화했고, 거기에 스마트 속성이 더해지면서 기술적인 혁신은 가속화되었다. 무엇보다도 영상 콘텐츠는 제작, 유통, 저장 등 전방위에 걸쳐 급격한 변화를 보였고 어느새 유튜브를 비롯한 인터넷 플랫폼에 집중된 현상을 보인다. 인터넷 공간에서 영상 콘텐츠는 다수의 대중문화가 아닌 이용자가 주도하는 하위문화의 특성을 드러내며 파편화된 속성을 나타낸다. 콘텐츠 내용과 형식은 플랫폼 속성과 이용자 욕구를 반영해서 새로운 방식을 추구하며 수많은 콘텐츠와 이용자들을 인터넷 플랫폼에 끌어들였다.

인터넷 플랫폼은 크리에이터 또는 인플루언서, MCN 등을 활용해 신규 비즈니스 영역을 창출하고 병맛(어이없고 맥락 없는 내용구조), 숏폼(short-form) 등의 형식으로 컬트(cult) 감성을 자극해왔다. 최근 이런 양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즉 인터넷 플랫폼이 지닌 현대적 감각 속에 아날로그 감성을 절묘하게 접목하며 다시금 인터넷 공간에서 대중문화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돌아온 복고라고 지칭되는 레트로(retro)는 젊은 세대와 중장년층 모두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하나의 콘텐츠 장르를 형성하고 있다.

레트로는 사전적 의미로 추억이라는 ‘Retrospect’의 줄임말로써 과거의 기억이나 추억을 재구성하여 이를 그리워하는 감성을 자극한다. 레트로는 이미 패션, 인테리어, 음악 분야 등에서 ‘복고주의’, ‘복고풍’으로 지칭되며 기존에 존재했거나 유행했던 것을 현대적으로 만들어 간헐적으로 사용해왔다. 다시 말하자면 레트로는 과거를 차용해서 현재를 파는 형태이다. 사회 전반적으로도 레트로가 반영되어 나타나는데 지난 10년간 특허청에 출원된 상표 중에서 ‘~당’, ‘~옥’, ‘~식당’, ~상회‘ 등 복고풍의 상표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고 최근 4년 동안 2배 이상 증가한 것에서 짐작해 볼 수 있다. 이전에도 ‘복고’의 형태를 빌어 간헐적으로 활용되었지만 따로 레트로라고 구분하는 것은 단기적인 트렌드인지, 아니면 하나의 장르이자 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지에 따라 차이가 있다.

방송 콘텐츠에서도 레트로는 드라마와 예능을 중심으로 일부분이 반영되어왔다. 국내에서 흔치 않았던 시즌제를 도입하고 전작의 포맷이나 스토리를 이어나가 연속성을 부여한다. 소재에서는 사극처럼 현시점과 먼 역사물이 아니라 가까운 옛날을 다뤄 시청자의 과거 향수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시키는데 활용하기도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추억의 인기 스타가 자신의 리즈 시절 활동을 토대로 내용을 이끌어가기도 한다.

그림 1. 방송 콘텐츠에서 레트로 현상이 반영된 예 / 출처 : 각 방송사 홈페이지
그림 1. 방송 콘텐츠에서 레트로 현상이 반영된 예 / 출처 : 각 방송사 홈페이지

이런 면에서 인터넷 플랫폼의 레트로는 하나의 장르이자 문화로 평가되고 있다. 인터넷 플랫폼이 영상 콘텐츠의 주요한 창구로 변화하면서 레트로 장르는 차별화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초반에 인터넷 플랫폼은 신선하고 혁신적인 콘텐츠로 틈새시장을 공략하며 성장해왔다. 이제 많은 사람이 소비하는 주류 미디어로 자리 잡으면서 콘텐츠의 소재 고갈과 창작에 대한 고민이 시급해졌다. 게다가 콘텐츠에 대한 이용자의 기대 욕구도 나날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유튜브 콘텐츠에 대한 이용자 행태 변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처음 유튜브는 누구나 영상을 만들어서 업로드할 수 있는 이용자의 직접적인 콘텐츠 참여 공간이었다. 이후 수많은 영상 콘텐츠가 유튜브로 집중되면서 이용자는 자신이 원하는 주제의 질 좋은 콘텐츠를 소비하고자 했다. 이제 한발 더 나아가 단순히 오락적 재미 이외에 보다 성숙된 질적인 콘텐츠를 기대하고 있다.

그림 2. 유튜브 콘텐츠 이용자의 행태 변화 / 출처 : 나스미디어 (2019)
그림 2. 유튜브 콘텐츠 이용자의 행태 변화
/ 출처 : 나스미디어 (2019)

미디어 시장에서 레트로 현상은 영상 시장보다 음악 시장에서 먼저 발생했다. 영상과 음악은 결이 조금 다르지만, 미디어 환경의 거듭되는 변화 속에서 적응해가는 과정들과 레트로를 통해 다시 과거로 회귀한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서로 닮아있다. 음악 시장에서 레트로 현상이 발생하기까지 일련의 흐름을 되짚어보고 영상 시장의 레트로 현상을 한번 고찰해보자. LP 레코드판은 1931년 빅터(Victor)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지만, 1948년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비로소 보급화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LP 레코드판의 문제점은 크고 무거웠고, 시간이 지날수록 스크래치가 생겨서 판이 튀어 홈을 건너뛰기도 했다. 또한 정전기가 생겨서 먼지가 잘 들러붙었고 공간을 많이 차지해서 상점이나 집에서 보관하는데 쉽지 않았다. 이런 문제점은 음악 시장이 점차 CD와 MP3의 디지털로 변화해감에 따라 고질적인 단점으로 여겨지며 매출에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였다.

그림 3. 음악 시장의 변화
그림 3. 음악 시장의 변화

반면 스트리밍은 달랐다. 디지털이 가장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오히려 음악 시장은 조금씩 LP로 다시 회귀하는 현상을 보였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시작된 2006년부터 최근까지 LP 시장은 미약하지만 조금씩 활기를 찾고 있다. 이런 반전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우선 LP 판매량이 저조했던 시절에도 단 한 번도 판매를 멈춘 적이 없었다. 레코드판의 인프라는 침체기를 겪고 있었지만 대체로 기능들을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부유한 수집가들을 중심으로 탄탄하게 틈새시장을 형성해가며 펑크, 힙합, 댄스 등 언더그라운드 장르에서 다시 자리를 잡아 갔다.
두 번째, 미디어 환경이 디지털로 전환됨에 따라 이를 이용해서 새로운 전략을 마련해갔다. 스트리밍 환경은 음악 콘텐츠를 손쉽게 즐길 수 있는 편의를 제공했지만, 월정액 기반의 플랫폼 서비스는 수많은 무료 음악들을 제공해서 전체 음악 시장을 하향시키고 음악 콘텐츠에 대한 본질적인 가치를 하락시키는 역작용을 가져왔다. 그동안 LP 레코드판은 휴대와 관리의 어려움, 음질 변화의 우려 등이 단점으로 지적되어왔다. 이런 점은 오히려 스트리밍 환경에서 LP로 음악 콘텐츠를 접하려는 희소성과 애착을 불러일으켜 소유의식을 증가시키는데 기여했다. 결과적으로 창고에 잠들어 있었던 LP 레코드판이 아마존(amazon)이나 이베이(ebay) 등의 인터넷 쇼핑몰에서 다시 판매되기 시작했고 젊은 문화로 재진입하는 현상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오프라인 LP 레코드판 매장들이 중심이 되어 해마다 4월 첫 주에 레코드의 날(Record Store Day)을 열어 구매자에게 LP에 대한 인지도와 새로운 경험을 부여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음악 시장이 스트리밍 환경까지 변화하면서 다시 LP가 최신 문화로 소비되며 과거의 경험을 통해 향수를 갖고 있는 중장년층들과 함께 공감대를 나눌 수 있는 요소로 변화했다.

그림 4. 미국의 LP 레코드판 판매량 / 출처 : statista (2019)
그림 4. 미국의 LP 레코드판 판매량 / 출처 : statista (2019)

영상 시장도 마찬가지다. 물론 콘텐츠 성격은 다르지만 음악 시장이 변화해온 길을 대체로 유사하게 답습하고 있다. 영상 콘텐츠가 인터넷 플랫폼으로 집중되는 현상이 심화하면서 전통 미디어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나 지상파 방송사들은 과거에 비해 해마다 저조한 매출 현상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으며, 동시에 신생 미디어들과 경쟁 속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입장에 놓여있다. 따라서 지상파 방송사는 플랫폼 전략으로 레트로 영상을 시도하고 있다. 제일 먼저 레트로 현상을 일으킨 것은 SBS이다. SBS는 창사 30주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서 유튜브에 K팝 콘텐츠를 활용하는 ‘K-POP CLASSIC’ 채널을 신설하고 24시간 동안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채널은 ‘SBS 인기가요’에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방송했던 영상을 활용하는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맘카페 등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하며 개설된 지 3주 만에 22,000명을 돌파했다. 또한 2019년 8월 말에는 실시간 접속자 수가 2,200만 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 당시 낮에 많은 사람이 동시 접속한 현상을 일컬어 ‘온라인 탑골 공원’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K-POP CLASSIC’ 채널에서는 분절된 클립 형태의 콘텐츠가 아니라 영상 제공방식만 유튜브로 옮겨진 형태인데 여과 없이 원본에 가까운 방송 프로그램을 정주행할 수 있다.

그림 5. SBS ‘KPOP CLASSIC’ / 출처 : 유튜브 채널 이미지 캡처
그림 5. SBS ‘KPOP CLASSIC’ / 출처 : 유튜브 채널 이미지 캡처

비슷한 맥락에서 KBS도 지난해 10월부터 ‘가요톱 10’의 영상 자료를 활용해서 ‘Again 가요톱 10’ 채널을 신설해서 운영 중에 있다. 채널이 개설될 무렵, SBS ‘K-POP CLASSIC’이 갑자기 주목을 받으면서 함께 회자되었다. 하지만 SBS와 다르게 KBS는 노래별, 가수별, 연도별 등 세분화된 주제로 클립 단위의 영상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편 코미디의 명가답게 KBS는 ‘크큭티비’라는 채널을 통해 ‘개그콘서트’, ‘유머일번지’, ‘폭소클럽’ 등의 지나간 유명 코미디 프로그램의 소코너별로 분절된 클립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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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KBS ‘Again 가요톱 10’과 ‘크큭티비’ / 출처 : 유튜브 채널 이미지 캡처
그림 6. KBS ‘Again 가요톱 10’과 ‘크큭티비’ / 출처 : 유튜브 채널 이미지 캡처

한편 MBC는 ‘옛드TV’ 채널에서 추억 속의 드라마를 제공하고 있다. MBC가 레트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식은 SBS나 KBS와 조금 다르다. 클립 형태의 영상 콘텐츠가 아니라 원본 영상의 초반부가 20여 분 동안 제공된다. 이후 후반부 내용은 유료결제를 통해 시청을 유도하고 있다. ‘옛드TV’ 채널에서 초반부 무료 영상으로 흥미를 자극하고 후반부는 SKB와 푹의 연합 OTT인 웨이브(WAVVE)에서 결제 후 시청할 수 있다.

그림 7. MBC ‘옛드TV’ / 출처 : 유튜브 채널 이미지 캡처
그림 7. MBC ‘옛드TV’ / 출처 : 유튜브 채널 이미지 캡처

기존 방송 프로그램은 요즘 영상에 비해 고급스러움이나 세련된 느낌은 덜하다. 그러나 현재 미디어 환경과 상반되는 낙후되고 불완전한 매력들이 오히려 신선하게 작용한다. 한편 중장년 세대와 시니어 세대에게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감성 콘텐츠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나 스마트 미디어로 유년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보내온 젊은 세대에게 기존 방송 프로그램이 활용된 레트로 콘텐츠는 새로운 유형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인터넷 플랫폼에서 연령이나 취향별로 콘텐츠 소비의 편향화가 심화하던 가운데 지상파 방송사의 레트로 콘텐츠는 젊은 세대와 중장년 및 시니어 세대를 연결하는 일종의 가교역할이 되고 있다. 분명 지상파 방송의 레트로 콘텐츠가 세대별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했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결과치가 부재한 상황이다. 즉 레트로 콘텐츠가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로 인해 지상파 방송사가 구체적으로 얻게 된 것은 무엇일지 의문이다. 아마도 지상파 방송사의 레트로 콘텐츠는 단순히 이목 끌기 용도만이 아니라 사업적인 수익성을 기대하며 계획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LP 시장이 고민했던 것에 비해 상당히 느리고 얕은 전략이다. 인터넷 플랫폼에서 지상파 방송사는 레트로 콘텐츠로 세대별 공감 요소를 찾았다. 과거의 방송 프로그램을 단순히 분절하거나 스트리밍하는 형태에서 한 단계 나아가 재해석을 넘어 독창적인 가치를 부여한 콘텐츠로 재탄생시켜야 할 것이다. 추억 호소 형태의 레트로 콘텐츠에서 본질은 유지하며 독특한 스토리와 경험이 가미된 뉴트로(new-tro) 콘텐츠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난도 외 (2019). 트렌드 코리아 2020. 서울; 미래의 창.
나스미디어 (2019). 2020 미디어트랜드 전망 DIGITAL MEDIA & MARKETING TREND FORECASTING. nasreport 300호.
데이비드 색스 (2017). 아날로그의 반격. 서울; 어크로스.
이정현 (2019). 온라인 탑골공원과 펭수, 위기의 지상파가 보여준 불씨. 방송문화, 2019 겨울 호(통권 419호).
statista (2019). The Surprising Comeback of Vinyl Records(by Felix Richter). Music in the U.S., Infograph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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